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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28 일본 방문기(2006/05/26~05/31)




[첫째날-5월 26일]
인천공항에 집결,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다. 이번 일본방문팀의 구성은 윤대현 관장 내외, 제주지부장 문영찬 도장장, 송은석, 송경창 씨, 이호석, 김용세 이사, 유종 씨, 문병진 씨 및 본인 총 10명. 6월 2일 일본에 도착하는 정연동 이사까지 포함하면 총 11명의 구성.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한 컷)

방문의 목적은 제44회 全日本合氣道演武大會 및 메이지대학 아이키도부 결성 50주년 및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 고희 기념파티, 이가라시 도장 합숙 참가의 세 가지. 이외에도 고바야시 도장, 하시모토 도장, 세계본부도장, 스가와라 무도연구소의 방문이 포함되었다.

관장님 내외분과 본인을 제외하면 첫 해외방문이므로 모두들 즐거운 기색이 만면에 번진 채 일본에 출발. 4년 만에 다시 찾은 신주쿠는 여전히 활발한 기운이 넘쳤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세이부 신주쿠선을 이용하여 도꼬로자와 도장으로. 지난 1998년도에 내제자 생활을 했던 도꼬로자와 도장. 4년전 방문 때에는 고다이라 도장을 이용했었기에, 근 8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다. 예전 기억 속의 낡은 1층짜리 목조건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완전 신축한 3층 건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8년만에 찾은 도꼬로자와 도장)



(도꼬로자와 도장 내부에서 한 컷)


1층은 도장, 2층은 히로아키 선생의 자택, 3층은 숙소로 사용되는데, 호텔을 이용하는 관장님 내외와 유종 씨를 제외한 한국방문단은 1층 도장에서 묵는 것으로 결정.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곁들인 간단한 다과회를 하면서 변해버린 도장의 모습을 눈에 익혔다. 1층에서는 내제자인 가사하라 유지, 야마와키 우카이를 비롯, 미국에서 온 마이클, 알제리에서 온 아지즈, 튀니지에서 온 또 한 명 등 5명이 사용하고 있다는 히로아키 선생의 전언. '사이 좋게 지내세요'

밤 10시가 넘어 돌아온 5명. 모두 피로가 역력해 보인다. 내제자 생활이 매우 바쁜 일정의 연속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서로 통성명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주변을 정리하고 잠을 청하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했으나, 다른 방문단들은 생각지 못한 반응에 당황한 기색. 그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도장을 나와 도꼬로자와 역 옆에 붙은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후 늦은 취침, 다음날을 준비하다.

[둘째날-5월 27일]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과 함께)

새벽 5시에 기상. 오전 10시 도꼬로자와 도장의 수련을 준비하는 내제자팀들과, 새벽 6시 30분의 고다이라 도장의 수련에 참가하려는 한국팀 모두 분주하다. 내제자팀들을 뒤로 하고 고다이라 도장으로 향했다. 고다이라 도장의 토요일 새벽은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이 지도하는 시간이다. 변함 없는 고다이라 도장의 모습. 자그마한 도장 내부는 일본인 수련생들 이외에도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등 북유럽팀들로 이미 붐볐다. 고바야시 선생의 지도로 단도 횡면타 및 찌르기에 대응하는 기술들을 연습. 수련 후 대면한 고바야시 선생은 여전히 정정하신 모습이다. 작년 한국어로 번역한 고바야시 선생의 자서전에 사인을 받았다. 선생은 한국팀들을 위해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이 담긴 오래된 앨범을 보여주셨다. 평소 접할 수 없던 사진들이 많았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대학 동기인 S군은 국가유학시험에 합격하여 8개월 전에 히토쯔바시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로 고바야시 도장에 입문하였다고 한다. 새벽 수련에 참가한 이유는 한국팀이 올테니 만나보라고 고바야시 선생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것. 선생의 배려에 새삼 감사드렸다. S군이 입문하였을 당시에도 고바야시 선생이 당신의 자서전 한국어판을 보여주시며 내 얘기를 하셨다고.

S군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점점 굵어지는 빗속을 뚫고 일본 무도관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무도관은 생각보다 매우 컸고, 사람들로 붐볐다. 전일본대회이지만, 각국 대표의 참여가 가능하므로 실질적인 세계대회와 다름 없다. 국제대회는 오히려 강습회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차이가 있다.

(연무대회장 전경)

5개의 연무장이 정방형으로 늘어서 있고, 연무팀의 규모에 따라 연무장 사용규모가 달라진다. 보통 1분에서 1분 30초, 사범(6단 이상 전문지도자로서 세계본부의 승인을 받은 자)은 3분여의 시간이 주어진다. 앗 하는 순간에 끝나버리는 짧은 시간인지라, 참가와 다른 도장과 선생들의 특색을 익히는데 중점을 두는 '참여의 공간'이다.


(한국대표단의 연무 광경)

여러 팀들의 단체연무 분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마치 매스게임을 보는 듯 딱딱 맞춰진 연무와, 어찌 보면 어수선하게 여겨질 정도로 자유로운 연무로 나뉘었다. 지도자의 성향이 다분히 드러난다고 생각되었다. 평소 직접 보고팠던 선생들의 연무는 미홉하나마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 삼각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영상만으로 보던 것과 실제 보는 것은 역시 오감이 총동원되어서인지 확실히 차이가 났다. 특히 한국에서도 유명한 와타나베 노부유키 8단 선생의 연무가 그랬는데, 선생과 받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략적인 원리야 어느 정도 알겠지만서도, 역시 실제로 당해보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와타나베 선생 연무가 끝나고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윤대현 관장을 자주 챙겨주시는 다키모토 세이조 7단 선생께서 한국팀을 소개시켜 주신 것인데, 이 잠깐의 만남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주셨다. 다키모토 선생 덕분에 와타나베 선생의 한국방문이 가시화 되었다는 수확이 있었다.



(와타나베 선생과 함께. 가까이서 본 선생의 외모는 창시자의 중년기의 모습과 매우 비슷해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맨 우측은 다키모토 세이조 7단 선생.)

연무장 통로 주변에는 무도관과 세계본부를 포함, 이와타, 토잔도 등 무술용품점들이 부스를 차리고 기념품과 무술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목제 단도 2개를 구매했다. 하카마의 특가세일이 진행되었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지름신 강림 실패. 대신 무도관 주변의 또다른 무도용품점에서 속도복을 샀다.

연무대회 종료 후 가까이 위치한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벌어진 메이지대학 아이키도부 50주년 기념파티에 참가. 고바야시 선생의 고희 축하연을 겸하는지라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OB, OG를 비롯, 고바야시 선생이 길러내 일본 국내외에 파견한 사범들과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도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하였다.



(고바야시 선생과 함께)



(도주와 함께)


(윤 관장 내외 고바야시 선생에 선물로 한국 전통 떡 증정)



(독일 아이키카이의 아사이 가츠아키 선생의 감사패 증정)

파티의 하일라이트는 메이지대학 응원단의 응원. 8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응원단은 한국에도 다큐멘터리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응원단 이외에도 대학 체육회에 속한 아이키도부 학생들 역시 가쿠라인(學line, 학생복)을 평소에 입게 되어있어, 처음 보는 가쿠라인의 물결에 한국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이지 대학 응원단 특유의 찌푸린 얼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응원단장의 퍼포먼스. 공연 후 응원단들을 직접 만나보았는데, 아까의 박력은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로 풋풋함이 느껴졌다. 현대 일본의 학생들도 응원단의 존재를 시대착오적으로 보는 쪽이 많지만, 하나의 대학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메이지대학 응원단 한 컷. by 이호석)



파티가 끝나고 히로아키 선생과 함께 도꼬로자와역 근처의 식당에서 다시 간단한 파티를 하고 둘째날을 마무리했다.



(파티를 마무리하면서 기념사진.)

[셋째날-5월 28일]
오전 11시의 하시모토 도장 수련에 참가. 이가라시 카즈오 7단 선생의 하시모토 도장은 요코하마 지역의 하시모토역 근처에 있다. 도장에 도착하니, 어제 새벽수련과 마찬가지로 북유럽팀들과 일본인 수련생들로 아담한 도장이 이미 웍더글 덕더글. 이날 수련은 하와이의 로버트 쿠보 선생이 지도했다. 마무리 기술의 응용으로서 시카고 스타일을 보여주시기도 했는데, 고류유술의 기법과 닮아있었다. 70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몸놀림을 보여주셨는데, 주로 2교를 위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셔서 다양한 스타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수련 중간에는 본인과 본인의 파트너인 일본인을 지명하셔서 잠깐 시범을 보이도록 하시기도 했다.

수련 후에는 다시 파티로 왁자지껄. 로버트 쿠보 선생, 이가라시 선생, 캘거리 아이키카이의 이나바 야스히사 선생은 고바야시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한 의형제 사이. 북유럽팀의 리더 우르반 아르덴크리드 씨는 스웨덴 협회의 회장이자 국제아이키도연맹의 이사로서, 역시 위 선생들과 함께 내제자 생활을 하여 막역한 사이였다. 우르반 씨는 대한합기도회를 적극 협력하고 있기도 하다. 큰 몸집이 무척 인상깊어 한국팀은 그를 '바이킹 씨'라고 불렀다.



(미스터 바이킹, 우르반 씨와 함께)

쿠보 선생에게 3년 전 하와이 방문과 선생이 고안한 쿠보탄의 질문을 하니, 기념품이라며 직접 쿠보탄을 선물해주셨다. 쿠보 선생의 쿠보탄은 경찰봉을 응용한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열쇠고리 형태의 쿠보탄(고소쿠류 가라데의 쿠보타 다카유키 선생 고안)과는 좀 다르다.



(로버트 쿠보 선생과 함께. 운영자 손에 들린 것이 쿠보탄.)

한국, 일본,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웨일즈, 미국, 캐나다 8개국 사람들이 아담한 도장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움을 나눴다. 이것이 아이키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오후 1시를 넘겨 시작한 파티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파티에 참가한 선생들과 함께. 전열 좌측 세 번째부터 로버트 쿠보 선생, 이나바 야스히사 선생, 전열 맨우측 이가라시 카즈오 선생.)

[넷째날-5월 29일]
새벽 4시 반 기상. 신주쿠로 향하다. 세계본부도장의 새벽 6시 30분 수련에 참가. 월요일부터 금요일의 새벽수련은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가 지도한다. 카운터에서 1일 수련비를 치르는데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모리테루 선생이 도복차림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팀임을 먼저 알아보고 카운터에 잘 챙겨주라는 한 마디.

총 4층으로 이루어진 세계본부도장은 2층-4층을 수련에 사용하는데, 도주의 수련이 진행되는 3층 도장 역시 세계각국의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수련시간 전부터 정좌를 하며 도주의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이 진지했다.

모리테루 선생의 받기를 번갈아 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그의 아들이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 역시 그렇게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은 수련 중 일부러 한국팀이 있는 쪽에 자주 오셔서 자세나 요령 등을 교정해 주시는 배려를 해주었다.



(수련 종료 후 기념사진. by 이호석)

수련이 끝나고 둘러보니 프랑스에서 지도하는 다무라 노부요시 선생이 보였다. 대선배격인 그도 도주의 수련에 학생들을 이끌고 참여한 것이다. 용기를 내어 선생에게 기념사진을 청했다.



(다무라 선생과 함께 한 컷. by 이호석. 이 사진 찍는 동안 관장님은 도주랑 1층에서 얘기하고 계셨다고. 죄송합니다.)

낮시간이 완전히 비어 신주쿠를 돌아다녔다. 각자 흩어져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집결하기로 한 후, 기노쿠니야 서점을 들렀다. 그간 사고자 했던 참고도서들을 확인한 후 실제 구입할 도서를 골랐다. 집결하자 이제 나머지 한국팀원들도 신주쿠 지리를 다 외우게 되었다..

이와타 상점을 들렀다. 4년만의 방문인지라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던 우려도 잠시, 발길이 자연스레 이끌려 도착. 전설의 할머니 3자매는 아쉽게도 외출중. 문영찬 제주지부장과 이호석 씨의 띠를 주문하였다. 1주일이 걸리므로, 6월 5일 귀국팀이 찾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천연이심류의 두꺼운 휘두르기용 목검을 사고 싶었지만, 1만엔이 넘는 비싼 가격. 역시나 지름신 강림 실패.



(4년만에 다시 찾은 이와타 상점)

오후 5시에 메이지대앞 역에 도착. 메이지대학 아이키도부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다시 보는 가쿠라인. 역시 제복을 입고다녀야 했던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유도장 두 개 크기의 도장은 아이키도부와 유도부, 가라데부, 권법부들이 시간을 달리 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도장이 위치한 체육관에는 검도장과 수영장, 테니스장도 들어간 꽤 크고 훌륭한 시설의 건물이었다.



(메이지 대학 도장 내부 전경.)

북유럽팀도 곧 도착했고, 메이지 대학생 반, 외국인팀 반으로 구성된 수련생들로 수련이 시작되었다. 메이지대생들로서도 외국인들이 이정도 규모로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1년에 4,5회 정도 외국인 수련생들이 오긴 하지만, 보통 2-5명 정도라고 한다.

수련하면서 왠지 모를 압박감. 배려가 지나치다고 할까, 규율에 이끌린 단체성이 드러난다고 할까. 마치 본인의 대학시절을 보는 듯 하다. 집단주의를 매우 싫어하는지라, 대학시절의 기억이 그리 좋지만은 않는데, 그것을 일본에서 다시 보는 듯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왜 이런 것은 이리도 비슷한 거지?' 군대라는 집단생활을 거치지 않는 일본에서는 운동부 등의 서클활동을 통해 집단생활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일반적인 일본인은 오히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수련 후 기념사진 한 컷. 왼쪽의 스즈키 군은 학교 선생이 한국인이라며 간단한 한국어를 곧잘 하기도.)

수련 후 다시 파티가 열리고, 늦은 밤 도꼬로자와 도장으로 돌아갔다. 야마와키 선생의 아들인 우카이 씨와 함께 역 공원에서 단 둘이 새벽까지 얘기를 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수련자로서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 야마와키 히사시 선생과 우카이 씨에게는 지난 1월의 한국방문이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수련인구는 적으나, 한국 수련생들의 연구하는 자세와 진지함은 기존의 일본인 수련생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는 선생의 감상을 전해주었다. 널리 전파되면서 형태만을 외우는 수련, 단순한 운동으로서 수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에 비해, 한국의 수련생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에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하나하나 의문을 갖고 나름의 궁리를 거듭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우카이 씨는 3년 간의 내제자 생활을 '힘들지만 인내를 배우는 기간'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바야시 도장의 일본인 내제자 생활은 매우 힘들다. 우선 대학이상의 학력을 소지하여야 하며, 최소 3-5년간의 사회생활 경험이 있어야 내제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회생활동안 3년 간의 내제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자금과 경영인으로서의 최소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후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기에 일반 수련생들에게 마음껏 기술을 펼치기 보다는, 기술을 받아주는 입장이 되어야 하며, 각지에 흩어진 도장들을 스케줄에 따라 바삐 이동하며 잡무와 시설관리, 외국인 수련생들의 뒷바라지를 하여야 하다보니 취침시간은 보통 밤 12시-1시, 기상시간은 새벽 4-5시인 강행군이 쉴새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내제자 생활을 이겨낸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진정한 지도자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은 빨라야 30세 전후, 보통의 일본인들에 비해 10년 가까이 늦은 시작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내를 이겨낸 내제자 출신 전문지도원들을 쉽게 대할 수 없다.



(한밤의 도꼬로자와 도장)



(한밤의 도꼬로자와 도장 내부.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아 흐릿하다. 오른쪽이 내제자들. 왼쪽이 한국팀.)

[다섯째 날-5월 30일]
아침 7시 기상. 고바야시 도장은 5월 30, 31일 양일간 휴관. 하지만 내제자들은 다른 지역 도장을 챙기는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은 스가와라 테츠타카 7단을 방문하는 날이다. 창시자의 내제자, 아이키도 뿐만 아니라 가토리신토류 및 태극권의 권위자. 스가와라 무도연구소 소장. 故 사이토 모리히로 선생의 무기술과 함께 아이키도계의 무기술 수련인구를 양분하다시피 한 스가와라식 무기술 창시자. 한국에서는 위 둘을 함께 수련한다. 그리고 사이토 선생의 첫 교본 5권을 출판한 사람.

스가와라 선생의 도장에는 이가라시 선생의 하시모토 도장에서 몇 정거장을 더 이동한 마치다 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야 닿을 수 있었다. 조용한 실버타운 주택가로 보이는 동네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하이츠맨션이 바로 스가와라 무도연구소였다. 1층은 도장, 2층은 선생 자택, 3층은 수련생들이나 하숙생들에게 제공하는 식으로, 좀 오래된 건물의 외양은 차치하고서라도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스가와라 무도연구소)

'예술가''편안한 할아버지'. 한국의 방문객들을 반가이 맞아주신 선생의 첫인상이었다. 자그마한 몸집에 섬세한 눈매. 이날 방문은 수련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지라, 근처 식당으로 바로 향했다. 일부러 선생의 뒤에서 걸음걸이와 뒷모습을 관찰하였는데, 마치 깃털 같은 가벼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스가와라 선생과 고바야시 선생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을 들라면, '자유로움'이다. 고바야시 선생의 것이 대범함에 가깝다면, 스가와라 선생은 초탈에 가깝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본인이 경찰관이고, 체포술에 많은 관심이 있음을 아신 선생은 선뜻 로버트 코가 선생의 체포술 연무 비디오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로버트 코가 선생은 일본계 미국인으로서 도헤이 선생의 미국내 초기 제자이다. LA지역 경찰관으로 종사하면서 아이키도를 바탕으로 한 체포술을 만들어 보급했는데, '코가주츠'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대와의 컨택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미리 컨트롤하는 사전 제압을 중시하는 그의 체포술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다. 선생과 관장님 내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시청한 코가 선생의 시연 비디오는, 본인이 2년 전에 재현한 미국의 체포술도 역시 코가술을 바탕으로 하였던 것인지 거의 흡사한 모습이었다. 사진 몇 장만을 바탕으로 한 재현임에도 선생의 것과 일치하였다는 점에서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여 피로가 쌓였음을 눈치채셨는지, 잠깐 눈을 붙이라며 3층의 원룸 두 채를 내어주신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어쩔 줄 몰라한 것도 잠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2시간여의 낮잠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자 선생이 또다른 코가 선생의 비디오 복사본을 건내신다.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 선생은 처음 본 학생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신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가와라 선생과 함께. 자고 일어난 직후라 얼굴이 부었다..)

다시 하시모토 도장으로 향했다. 같은 고바야시 도장 계열이지만, 하시모토 도장은 이번 주말 합숙이 있는 관계로 정상 수련을 한다. 다만, 일반 수련생은 그 사실을 잘 몰랐는지 이번에도 외국인 수련생들로 꽉 찼다. 먼길을 온 학생들을 배려한 것인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2인 처리 기술을 중점적으로 지도해주셨다. 2인을 상대하는 것도, 1인을 상대하는 것도 역시 근본적 원리는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우쳐 주셨는데, 버벅거리기만 하는 학생으로서는 죄송할 뿐이었다.

도꼬로자와 역으로 이동. 관장님의 숙소 체크아웃을 한 후, 다시 고쿠고엥의 도꼬로자와 도장으로 이동. 관장님은 오늘밤부터는 도장에서 머무르신다고. 고바야시 도장에서 외국 선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아파트 두 채가 있지만, 관장님께서는 도장이 편하다며 고사하셨다. 역 앞 공원에서 간단한 음료와 함께 대화자리를 가진 후, 도장으로 들어섰다. 잠이 깬 우카이 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 얘기를 나눴다. 히로아키 선생에게서 '윤 관장이 도장에서 묵을 테니 잠자리를 마련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엣, 수련생도 아닌 선생이 우리랑 매트 위에서 잔다고요? 정말 오시나요?'라고 반문했다고. '윤 선생이 온다고 했으니 꼭 올 것'이라며 씩 웃는 히로아키 선생에게 갸우뚱할 따름이었지만, 정말 오신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국에서 보았던 '윤 선생다움'을 다시 볼 수 있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여섯째 날-5월 31일]
귀국하는 날이다. 합숙 참가를 위해 일본에 남는 사람들은 군마현합기도연맹 회장인 아라이 선생을 만날 약속이 되어 있어, 귀국팀과 함께 도장을 나섰다. 도장을 나서기 전 내제자들과 작별인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2층에서는 히로아키 선생이 마중나와 한국팀을 위한 작은 선물을 전했다.

꼭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안녕.

이제는 모두들 신주쿠 지리가 머릿 속에 익었는지, 각자 행동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은 데다 몸은 천근만근이라 가까운 맥도널드에 들렀다. 2층은 흡연자용인지라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근처 노점에서 산 만화잡지를 뒤적이며 휴식을 취했다. 옆의 제주지부장은 테이블에 엎드려 쥐죽은 듯 조용하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한국땅을 밟으니 시간은 이미 밤이 깊었다. 약 1주일 간의 일본방문도 이제는 꿈 속인양 싶다.

그저 경치구경, 사람구경이 아니라 여러 선생들, 학생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체험하면서 그들과 내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 외국 방문수련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기회가 되는 분들은 꼭 한 번 함께 하길 권한다.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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