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ippon-kan.org/senseis_articles/09/the_beginning/the_beginning.html
You can read the original article in English through the link above.

- 원문은 위 링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홈마 선생의 전기, 꼭 사보고 싶군요.
- 이 번역문을 꼭 제가 바라는 누군가께서 읽어보시고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면 너무나 기쁘겠습니다.


니폰칸의 초창기

서문

니폰칸 창립자

홈마 가쿠(本間學)


며칠 전 나는 50대를 지나 새로운 갑자로 들어섰다.; 최소한 일본식의 생일계산상으로는. 내가 더 이상 생일 축하를 큰 파티나 많은 즐거운 일들로 꾸미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크리스마스나 신년 축하자리에 참석하는 것조차도 그만두었다. 대부분의 내 제자들은 이를 이해하고 있다. 특히 나를 오랬동안 알아온 이들은. 나는 이를 내 삶에서 경험한 철학의 반영으로서 행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게 편하다.

내가 미국에서 '선생'으로서 생활한지는 37년이 되었다. 제자들이 생일 파티를 아주 크게 벌여서 선물이나 현금`수표가 들어간 축하카드를 뜯는 데만 30분 이상 걸렸던 적도 있다. 내 스스로 그러한 파티나 선물을 바랐던 적도 있다. '선생'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이는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특히나 거창했던 파티 다음에 찾아온 엄청난 숙취 속에 깨어났는데,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 생일을 축하하는 온당한 방법이 아니야." 다음 해에 나는 제자들에게 파티 대신에 시에서 주관하는 자선 프로젝트에 함께 참가할 것을 권했다. 이 전통은 여전히 존중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지금의 AHAN(아이키도 인도주의 행동 네트워크, the Aikido Humanitarian Active Network)의 시발점이었다.

또한 나는 AHAN으로서 여행하면서 세계의 미개발 국가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순전히 생존을 위해 살거나 전쟁의 참상, 빈곤, 질병 등을 목격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으며, 이는 내 삶과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

니폰칸은 지난 37년간 내 꿈 또는 예상을 넘어서 발전했다. 오늘날 AHAN 니폰칸은 "봉사하는 무도(Engaged Budoism)"을 기치로 내걸고 세계 곳곳의 친구들과 함께 글로벌한 수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아이키도 도장이며 우리의 조직도 아이키도에 맞춰져 있었지만, 최근 우리의 포커스는 아이키도 수련을 넘어선 많은 프로그램들을 포함하는 것에까지 확장되었다. 기본적 생계와 보살핌을 더욱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다.

니폰칸의 모든 역사를 아는 제자들이 아주 드물다. 많은 제자들이 니폰칸이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이나 도장조차 없던 시절에 니폰칸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한다.

최근 제자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그 대부분은 어떻게 독립도장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지 또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듯이 도장과 문화센터를 함께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니폰칸의 역사나 그 성공과 실패의 핵심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수년 간의 노력이 축적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아가는 것이다. 하루 하루, 조금씩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 마법의 해답 따위는 없다.

아마도 니폰칸이 현재 가고 있는 길이 "산꼭대기에서 명상중에 불현듯 떠올랐다"고 말한다면 보다 신비롭기야 하겠지만, 사실 이것은 "엄청난 숙취 다음날 아침"에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뜻하는 바는, 누구라도, 나처럼 젊은 시절 "노는 데" 잔뜩 시간을 보낸 사람조차도 이러한 동일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목표나 꿈이 없이는 공허하다. 이들은 우리의 삶에 의미와 희망을 부여한다. 그러나 단지 목표나 꿈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면서 깨달음을 구하거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랄 수는 없다. 때로 목표가 희미해지거나,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이것은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목표에는 노력이 깃들어야 하는 것이지, 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딛는 한 걸음, 타협의 한 턴, 모든 전환(텐칸)들이 목표를 향해 당신을 한 걸음 다가가게 만든다. 내딛은 걸음은 결코 허비된 걸음이거나 뒷걸음이 아니며, 모든 걸음은 앞으로 향해야 한다. 제자리에 머물지 말고, 만일 목표나 꿈이 변한다해서 걱정하지 말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 기회가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다.

2006년에 나는 니폰칸 웹사이트에 "땅을 굳게 내딛으며(Walking Firmly on the Ground)"라는 글을 썼다. 그것은 한 일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가라데 마스터가 한 소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그의 구도(求道)에 대한 것이었다. 간단히, 그 소년은 우선 세발 자전거, 다음으로 두발 자전거, 마침내 외발 자전거를 마스터했다. 외발 자전거는 정상에 오름을 뜻하고 챔피언이 되었음을 은유한 것이다. 그 글에서 내가 썼듯이, 난 이 이야기에는 또 한 챕터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은 마치 별을 따려고 대나무 장대질을 하는 것과 같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땅에 맨발을 내딛으며 삶을 시작한다. 자라면서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을 싣기 위한 두발 수레가 필요할 거고, 다음으로 세발 수레, 또 다음으로 네발 리어카, 자동차 또는 트럭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보다 우리의 실제 삶에 가까운 비교이다. 자라면서 바퀴가 덜 필요한 게 아니라 더 필요해지는 것이다. 보다 많은 바퀴가 우리를 땅에 단단히 지지해줄 것이지, 더 적은 바퀴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실제 삶은 "수직적"이라기 보다는 "수평적"이다. 오늘날의 니폰칸은 많은 바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주 축복받은 제자들의 조직이 있어 우리의 사무부, 지도부, 유지및관리부를 구성하고 있다. 모든 제자들은 "못 한다"라는 말을 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제자들, 친구들 그리고 주변의 커뮤니티들은 니폰칸의 바퀴들이다.

***

현 아랍 에미리트 공화국의 아부다비 주재 일본 총영사인 야마가미 하루오 영사는 지난 2년간 덴버의 일본 영사로 재직했다. 덴버 재류중, 야마가미 영사는 니폰칸 본부에서 많은 밤을 세우며 나를 인터뷰하고 "콜로라도의 호랑이-한 아이키도가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매우 밀도있으며 2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21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니폰칸의 초창기, 30여년 전의 니폰칸 초창기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이 발췌문은 야마모토 하루키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야마가미 영사의 허락을 받고 번역되었다.

사실 야마가미 영사의 글을 위한 인터뷰는 니폰칸의 역사적, 독립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는 또한 위에 열거한 요청과 독립 도장을 발전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나는 37년 전 미국에 돈, 연줄, 제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없었고, 제로부터 시작했다. 이것은 만일 당신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또한 노력한다면 할 수 있음을 뜻한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21장
니폰칸의 초창기

야마모토 하루키 著

1960년대, "일본 붐"이 미국 동부를 강타했고, 특히 뉴욕과 보스톤이 그러했다. 미국의 학자들과 구도자들은 당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선(禪)을 비롯한 "동양의" 것들이 신비하고 정신적이며 "도(道)"라고 여기며 흥미를 가졌다. 70년대에 들어서는 이 붐이 홈마 선생이 일본 문화 센터를 열기고 결심한 콜로라도 덴버에까지 미쳤다. 이 새로운 문화 센터의 이름은, 그 목적이 미국 사회에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데 있었기에, 그대로 "Japan House Culture Center(일본 일상 문화 센터)"였다.

1976년에는, 일본 일상문화 센터는 일본어, 차도(茶道), 화도(花道). 서도(書道), 일본 요리와 일본 무술인 아이키도를 가르쳤다. 한창 피크일 때에는, 일본어 강좌는 200명 이상의 학생을 보유했고 다른 문화 강좌들은 교실이 꽉 찰 정도였다. 홈마 선생은 여전히 당시의 입회서를 얼마간 갖고 있으며, 나는 그 많은 수를 보고는 놀랐다.

처음에는 10명에서 15명의 일본 문화 강사들이 있었다. 모두들 대부분 일본에서 온 젊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중에서 당시 특별한 봉사자 중 한 사람은 시미즈 쿠미코 씨로, 덴버 대학의 교환학생이었다. 시미즈 씨는 공인받은 소게츠류 화도 강사로서 일본 일상문화센터 스태프에 참가하였으며, 후일 콜로라도 대학의 주임 일본어 강사 겸 코디네이터, 덴버 일본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우연이지만, 시미즈 씨는 또한 현 아이키카이 도주 우에시바 모리테루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덴버에서 캐리어를 쌓게 된 또다른 봉사자는 아사노 유미코 씨인데, 구몬수학교실의 소유주이자 교장이다. 유미코 씨는 일본문화센터의 일본어 강사로 일하였고, 센터의 지원을 받아 덴버에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 일상문화센터는 당시 홈마 선생이 덴버 보태니컬 가든 가까이에 빌린 2층 건물에 있었다. 모든 스태프들이 그곳이 살았다. 기숙사 스타일이었다. 낮에는 침실들이 책상과 의자들로 채워져 강의실로 사용되었고, 밤에는 스태프들이 책상과 의자를 옆에 치우고 매트와 이불을 깔아 잠을 잤다. 아침에 매트는 치워져서 방들은 다시 강의실로 탈바꿈했다.

당시 젊은 자원봉사자 대부분은 여성들이었고, 몇몇 일본계 미국인 사회의 리더들은 홈마 선생이 하렘(규방)을 차렸다는 루머를 퍼뜨렸다! 이것은 물론 사실이 아니었고, 루머는 새로운 문화센터의 성장에 큰 장애가 되지 못했다. 당시 덴버의 중견 일본무술 지도자들 중 몇몇은 이 새내기의 등장이 언제나 달가운 것은 아니었고 그의 스타일에 불평하기도 했다. 사범 모임에서 홈마 선생은 사범들로부터 "우리가 진흙탕을 마셔야 한데도, 네가 하는 짓을 하진 않을 거다. 우린 절대 너처럼 일본 문화 수퍼마켓을 차리진 않아!"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의 협박은 마침내 홈마 선생이 당분간 일본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결연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축복이었다. 덴버에 살면서 일본계 미국인 대신에 미국인 커뮤니티에 집중한 덕분에 홈마 선생의 아이디어는 궁극적으로는 큰 성공임이 드러났다.

문화강좌는 매일 저녁 5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었다. 낮에는 봉사자들은 도심지 소재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초청을 받아 일본문화 현장 체험을 진행했다. 모든 일본인 강사들이 영어에 능통하진 않았기에, 그들은 영어로 녹음한 카세트를 들고가 나레이터나 꽃꽃이, 서도 및 다른 시연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스태프들이나 관중들 모두에게 좋은 시스템으로 판명되었다. 가라오케(Karaoke)가 아닌, 가라데모(Karademo)는 대히트였다!

피날레는 언제나 홈마 선생에 의한 아이키도 연무였다. 이것은 목표들 중 하나로서, 보다 친근한 일본 문화를 일본무술 아이키도를 선전하는 길잡이로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홈마 선생은 우선 아이키도가였기에, 이러한 문화적 접근은 수고스럽긴 하지만, 성공적이었다. 선생들과 교장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학교로부터의 초청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시연이 하루에 3, 4개의 다른 학교에서 치러진 경우도 있었다.

문화강좌들은 잘 운영되었지만, 금전적으로는 기반이 잡히질 않아, 일본 일상문화센터는 아주 가난했으며, 그들은 돈을 아끼기 위한 많은 창의적인 방편들을 강구했다. 밤에, 스태프들은 꽃 도매시장에 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음날 클래스에 쓸만한 꽃들을 골라내기도 했다. 그들은 또한 가까운 들판과 강변을 샅샅이 뒤져서 쓸만한 싱싱한 꽃과 풀을 공짜로 얻기도 했다.

홈마 선생은 이 꽃 도매상 뒤편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심야작전에 대한 많은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다.한 남성 자원봉사자는 꽃을 찾다가 거대한 쓰레기통 속에 떨어져버렸다. 동료 스태프들은 쓰레기통 속에서의 소란을 듣고는 그게 그들의 떨어진 동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몇 분 뒤 그들은 그 소란이 침입자의 추락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도둑고양이에 의한 것임을 알았다. 고양이는 떨어진 봉사자를 사다리 삼아 그 봉사자의 몸을 발톱으로 헤치며 쓰레기통 밖으로 탈출했다. 그 봉사자는 성공적으로 쓰레기통에서 건져졌지만 일주일간 팔과 얼굴에 고양이 발톱 자국을 달고 다녔다. 그는 일본 문화센터로부터 그의 공적을 인정받아 명예 자색 훈장을 받았다.

또다른 일본인 자원봉사자는 그녀의 꽃꽃이 수업을 위해 재미있는 야생초를 수집하러 나갔다. 그녀가 돌아와 홈마 선생에게 자신의 전리품에 대해 말했다. "선생님, 오늘밤 수업을 위한 최고의 풀을 찾았어요.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골목길 펜스 주변의 풀숲에서 찾았어요. 이게 뭔지 아세요?" 홈마 선생은 풀을 보자 마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건 대마잖아! 아마 어떤 이웃이 풀숲에 한 두 개 심었나보군!" 그녀는 놀라며 풀을 다시 한 번 보고는 즉시 집어던져 버렸다.

홈마 선생은 일본 문화여행을 프로그램에 추가했고 평균 15명의 그룹들을 일년에 두 번 "진짜 일본"을 보여주기 위해 데려갔다. 홈마 선생은 그들을 데리고 일본 전역을 누볐다. 도쿄, 교토, 나라를 비롯하여 그가 한 때 일했던 미사와 공군기지에서 가까운 도와다 호수까지. 홈마 선생은 항상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선생들 중 한 사람으로서 미사와 근처에 살고 있던 스기모토 유키오 씨를 찾아뵈려고 노력했다. 그는 코마키 온천의 소유주였다. 스기모토 씨는 열심인 수집가로서 일본 민속에 대한 수집은 정평이 나있었다. 홈마 선생은 스기모토 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러한 기술들을 현재의 니폰칸 도장, 정원, 박물관을 세우는 데에 활용했다. 이러한 투어들 막바지에는, 만일 홈마 선생이 덴버의 콜렉션에 추가할 골동품을 발견할 경우에, 같이 짐을 들어줄 일손은 넘쳐났다!

Nippon Kan

400명 이상이 홈마 선생과 함께 격년 일본여행에 참가했다.

문화강좌와 시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것처럼, 일본 일상문화 센터는 지역신문을 시작했다. 신문은 매월 1만부 이상 덴버 지역 식당, 학교, 레크리에이션 센터, 커피숍 등에 배부되었다. 1만부를 직접 배부하는 것은 당시 엄청난 일이었지만, 홈마 선생은 미디어의 힘을 이해하고 있었고 모든 형식의 미디어를 일본문화센터를 세우는 데에 활용했다.

Nippon Kan

배부되기를 기다리는 신문뭉치들.

초창기의 일본 일상문화센터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쿠치 유타카 씨였는데, 일본 게이오 대학생으로서 덴버 대학에 교환 프로그램으로 온 사람이었다. 기쿠치 시는 이후 일본에 돌아가 니폰칸의 일본 지부장으로 재직중이지만, 그가 덴버에 있던 당시에는 홈마 선생의 오른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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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키 도장 건립 당시. 오른쪽에 있는 이가 기쿠치.

유타카는 일본문화센터의 아이키도 강좌에 초심자 등록을 하면서 홈마 선생과 조우했다. 그날 이후, 그의 덴버에서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타카는 그저 좋기만 한게 아니라, 똑똑하고 부지런한 자원봉사자로서 발전도상의 조직에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자원이 되었다. 기쿠치 씨는 홈마 선생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받아서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는 신문의 노련한 편집자였고, 모든 일본어 강좌와 번역을 도맡았다. 인생에 있어서 가끔, 꼭 필요한 사람이 꼭 필요한 시간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기쿠치 유타카가 바로 그랬다.

이 즈음 아주 유명한 선사(禪師)가 덴버에 강독을 하러 왔다. 그의 이름은 시마노 에도 선승이었고, 시마노 스님은 뉴욕의 대보살 선당과 뉴욕 선당의 창립자이자 주지였다. 그의 강독 후, 홈마 선생이 시마노 스님의 어깨를 주물러드렸다. 시마노 스님은 홈마 선생에게 조언하길, "자네는 젊지만, 일본 문화를 미국에 소개하는데 놀라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군. 나는 이것을 대단하게 여기네. 자네의 일본 일상문화센터의 이름을 생각해보았는데, 이건 너무 "가벼워." 이름을 "니폰칸(日本館)"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로고의 소 색깔도 보다 평화로운 흰색으로 바꾸는 게 좋을 걸세."

그날 이후, 일본 문화센터는 그 이름을 니폰칸으로 바꾸었고, 소 역시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 그 소는 사실 소년이 등에 올라탄 것으로 유명한 선화인 십우도(十牛圖)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깨달음에 다다르는 옛 가르침 중 6번째를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명칭과 로고는 그 가치를 잘 발휘하고 있다. 가끔 니폰칸이 일본 육우 회사로 오인받는 것을 빼면 말이다!

Nippon Kan 
홈마 선생이 시마노 스님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있다.

새로운 니폰칸은 문화강좌의 발전을 계속하였지만, 홈마 선생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키도의 발전에 있었다. 1983년 이전, 홈마 관장은 그의 아이키도 강좌를 YMCA로부터 빌린 공간에서 시작하였다. 1983년, 니폰칸은 페데랄 가에 위치한 빌딩 2층을 대여하여 그 첫 도장을 오픈했다. 1년 반 후, 강좌와 보다 넓은 장소의 요구가 늘어나면서, 니폰칸은 도장과 문화강좌를 체로키  스트리트의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체로키 도장이 열렸을 때, 홈마 선생은 매일 100명 이상의 아이키도 수련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키도 강좌의 수가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수련비는 여전히 너무 낮아서 니폰칸 스태프의 삶이 그리 나아지진 않았다. 이전 장에서 자세히 밝혔듯, 스태프들은 강변에서 채집한 풀이나, 홈마 선생이 관리하던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수거한 정부구호식품들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 식품은 정부 보조로 살던 난민들이 버린 것들이었다.

Nippon Kan

홈마 선생이 덴버 예술 박물관에서 연무하고 있다.


Nippon Kan 
자원봉사자들이 채소밭을 가꾸고 있다.

당시, 수강료는 하루에 콜라 한 캔 값 또는 한 달에 30달러였다. 이런 식으로, 모든 신입, 젊은 학생들은 강좌에 참가할 수 있었다. 목검과 장 수련은 매주 일요일 아침 치즈먼 공원에서 20명 정도 모여서 이뤄졌다. 야외에 있는 것은 수련에 좋은 환경이기도 했지만, 또한 선전에도 좋았다! 수련 후, 모두는 거나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데 매달렸다.

동시에, 바로 같은 공원에서, 또 한 명의 일본인 무술가가 가라데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는 초대형 샌드백을 나뭇가지에 걸고는 몇 시간이고 수련에 열중했다. 홈마 선생은 이 무술가가 다름 아닌 니노미야 조코, 유명한 가라데 챔피언이자 후일 엔신가라데(圓心空手)의 창설자임을 알았다. 홈마 선생과 니노미야 조코 사범은 오랜 친구가 되었고, 양자 모두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무도의 발전을 일구었다. 나는 니노미야 조코 사범에 대한 전기인 '헤이세이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일본에서 출판하였다. (역자주: 니노미야 조코(二宮城光). 1978년 극진회관 주최 전일본대회 우승자. 싸움10단 아시하라 히데유키의 애제자로서, 아시하라가 극진회관을 탈퇴하고 아시하라회관을 창설시 미국지부장 역임. 1988년 아시하라회관을 탈퇴하고 덴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원심회관 창설. 사바키 챌린지(Sabaki Challenge)대회가 유명.)
Nippon Kan 
공원에서의 일요일 아침 수련.

니폰칸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나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언제나 돈이 필요했다. 그들의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서, 홈마 선생과 두 남성 자원봉사자 및 몇몇의 아이키도 수련생은 사무용 빌딩 두 채의 수위 및 관리인으로 야간근무를 했다. 어느 날 저녁, 한 내제자가 일에 동참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들 청소하느라 바쁜 사이, 이 몬타나 출신 내제자는 사무실 전화 하나를 갖고 아주 기~ㄴ 통화를 할 기회를 챙겼다. 나중에 엄청나게 비싼 전화비가 나왔음은 물론이다. 매니저가 나중에 이를 발견하고는 모두를 해고시켜 버렸다! 이것은 니폰칸 스태프들에게 힘든 시기를 제공했지만, 홈마 선생은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았다. 홈마 선생은 거친 강물을 보면 다리를 세울 생각을 한다고 한다. 앞길에 큰 산이 버티고 있으면, 그는 터널을 판다. 어떠한 고난이든, 홈마 선생은 무언가를 궁리했다.

이 글의 저자로서, 나는 홈마 선생과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보낸  수많은 시간 동안 들은 얘기와 취재를 통해서 그가 니폰칸을 통해 한 일, 학교에서의 시연, 문화 강좌, 아이키도 강좌, 신문, 일본 여행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는 문화`정신의 교류라는 그의 꿈을 품고 행동으로 옮겼다. 홈마 선생의 힘은 너무나 대단하고 너무나 존경스럽다.

그의 에너지, 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일까? 난 여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그가 어려서 이와마 도장에서 살 때 가정부인 기쿠노는 종종 "가쿠가 눈 뜬 채로 자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창시자 우에시바와의 삶은 홈마 선생에게 발전의 시간이었으나 또한 긴장, 걱정에 트라우마마저 생길 정도의 경험으로 가득 찬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 그에게 좋은 쪽, 나쁜 쪽 모두 영향을 미치기도 한 것이라 생각한다.

홈마 선생은 이와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눈 뜬 채로 잠드는 내제자 생활을 했다. 젊은이로서 그는 아오가 섬에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해서 거의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가 처음으로 미국에 갔을 때, 그는 인간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슬럼가의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의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니폰칸을 시작할 당시 몇몇 일본계 미국인 커뮤니티로부터의 모욕과 차별을 겪는 것까지. 이 모든 경험들을 홈마 선생은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좋은 쪽으로 활용했다. 홈마 선생의 삶에는 그간 많은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니폰칸 문화센터의 초석을 다지는데 쓴 시간이라고 했다. 니폰칸의 초창기는 그가 뭐라 표현하든, 홈마 선생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두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시기였다.
미국은 홈마 선생과 자원봉사자 그룹에게 그들의 일본 문화와 유산을 이 나라에 가르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안위를 희생할 자유와 기회를 주었다. 니폰칸에는 이와는 비할 수 없이 가치 있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홈마 선생의 니폰칸의 꿈은 이제 전세계에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그의 꿈을 나누고 있는 많은 이들의 도움과 조력과 함께, 그의 세계에 대한 꿈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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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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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병수 2009/08/24 11:42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힘드시더라도 화이팅입니다!! ^^

 

http://www.nippon-kan.org/uchideshi/Sketch_diary_optimized2.pdf

Below is special introduction by author and Nippon Kan founder Gaku Homma sensei.
아래는 저자이자 니폰칸 창설자이신 홈마 가쿠 선생의 소개글.

Korean version, which is translated by Seung-yong Lee, is also available at KAF hombu dojo. KAF has permission by Homma sensei himself on distribution of his books in Korea.
한국어 버전은 이승용 2단에 의해 번역되어 대한합기도회 본부도장에서 구입 가능함. 대한합기도회는 홈마 선생님의 저작에 관한 한국내 권리를 선생에 의해 직접 부여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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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kido Sketch Diary, first published in 1994, is a hand illustrated chronology of a year of activities at Nippon Kan Dojo in Denver. Originally in Japan, the word dojo was used for the place where Buddha (Shaka) meditated and found enlightenment. Still today in Japan, the place where the Buddhist monks practice and meditate is called the dojo.

'아이키도 스케치 다이어리(The Aikido Sketch Diary)'는 1994년에 처음 발행되었는데, 덴버의 니폰칸 도장에서의 1년 간의 활동을 묘사한 연대기이다. 원래 일본에서는, 도장이란 단어는 붓다(석가)가 선을 수련하고 깨달음을 얻은 장소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불교 승려들이 수행하는 장소를 도장이라고 부른다.


Especially in the practice of Zen Buddhism, the daily activities and seasonal routines of the priests in training are all considered part of shugyo or practice in the dojo. A delightful book illustrating the life of a young monk in training has been written called Unsui Nikki (Diary of a Young Priest). This book is well illustrated and depicts the life of a monk in training with humor and honesty.

특히 선불교 수련에서는, 매일매일의 활동과 계절에 따른 루틴들 모두가 수행의 과정으로 여겨진다. 젊은 승려의 수행의 삶을 묘사한 유쾌한 책이 '雲水日記(운수이 닛키, 탁발승의 일기라는 뜻, 역자주)'이다. 이 책은 수행 중인 승려의 삶을 유머와 진실을 담아 잘 묘사하고 있다.

The Aikido Sketch diary is similar in style and content as Unsui Nikki, only it depicts the daily and seasonal activities at Nippon Kan dojo in Denver. It is not coincidental that life in a traditional Japanese martial art dojo is very similar to that of a Buddhist temple. Nippon Kan’s daily activities are based on the very same underlying traditional Japanese philosophy, and are reflected in life at Nippon Kan as chronicled in the Aikido Sketch Diary.

'아이키도 스케치 다이어리'는 스타일과 내용에서 '운수일기'와 비슷한데, 단지 덴버의 니폰칸 도장의 하루 일과와 계절 활동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일본무술 도장에서의 생활이 사찰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니폰칸의 일상 활동은 바로 그 같은 전통적인 일본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아이키도 스케치 다이어리'에 정리된 바와 같이 니폰칸에서의 생활에 투영된다.

The dojo is not a gym or a sports club, but I also want to make it clear that Nippon Kan does not copy or imitate the activities of a Buddhist temple, or any religious center. The activities at Nippon Kan are a reflection of my philosophy and the ongoing evolution of a lifetime of personal study. My life has been spent in study to understand what the true place and purpose of our practice of Aikido and it’s relation to our greater communities and world societies. The Aikido Sketch Diary is based on actual practice at Nippon Kan in 1994. Nippon Kan dojo is not a fantasy or a dream, but an ever evolving reality that has it’s roots in tradition and it’s emphasis on community service, inner development and practice, always practice. With this focus, our activities today have evolved and developed into Nippon Kan’s Aikido Humanitarian Active Network; AHAN with projects in countries around the world.

도장은 체육관이나 스포츠 클럽이 아니지만, 나는 또한 니폰칸은 불교사찰이나 다른 어떤 종교 센터의 활동을 따라하거나 흉내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 한다. 니폰칸에서의 활동은 나의 철학을 반영하며 일생에 걸친 개인적 성찰의 계속되는 진화이다. 나의 삶은 아이키도 수련의 진정한 장소와 목적, 그리고 보다 큰 사회와 세계에 대한 연관성을 이해하려는 공부하는데 쓰여졌다. '아이키도 스케치 다이어리'는 1994년의 니폰칸의 실제 활동에 바탕한 것이다. 니폰칸 도장은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전통, 사회봉사에 대한 강조, 내적 발전, 수련 그리고 수련에 뿌리를 둔 진화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의 활동은 니폰칸의 'AHAN(Aikido Humanitarian Active Network; 아이키도 인도주의 활동 네트워크)'로 진화 발전하여 세계 각국에서 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있다.

We receive many inquiries about our uchideshi or live-in student program, but the ratio of applicants to actual graduates of the program are about 10 to 1. Theuchideshi program at Nippon Kan is not easy. Uchideshi students are not guests and there is no red carpet laid out for them during their stay. Uchideshi students are in training 24/7 while they are at Nippon Kan and those who dreamed of becoming an instant martial art hero like they have seen in the movies either withdraw their applications or do not last very long into their training.

우리는 우치데시(내제자)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문의를 받지만, 지원자와 실제 완료자의 비율은 10대1에 불과하다. 니폰칸의 우치데시 프로그램은 쉽지 않다. 우치데시는 손님이 아니며 체재 중에 그들을 위한 레드 카펫이 깔려있지도 않다. 우치데시는 니폰칸에 있는 동안 하루 24시간 내내 수련하며 영화 속에서 보던 무술 히어로가 바로 되리라 꿈꿨던 사람들은 지원을 철회하거나 수련을 그리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I have decided to share this book on our website because it is a good representation of what daily practice is like at Nippon Kan Headquarters in Denver. The Aikido Sketch Diary was written in 1994 so Nippon Kan AHAN international activities are not illustrated in this book. It is a glimpse of the tradition at Nippon Kan, a tradition that still remains as we move forward in scope and scale as our activities develop world-wide. Reading this book again brings back fond memories of a time when Nippon Kan projects were smaller in scope but never smaller in vision.

나는 이 책을 우리의 웹사이트에서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덴버의 니폰칸의 일상 수련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아이키도 스케치 다이어리'는 1994년에 쓰여졌기에 니폰칸 AHAN 국제 활동은 이 책에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니폰칸의 전통의 한 단면으로서 우리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영역과 스케일이 커지면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전통이다. 이 책을 다시 읽자니 니폰칸 프로젝트가 영역은 작았지만 비전에서는 결코 작지 않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Today, Aikido is popular all over the world. Technique is taught in many styles and in great detail. I believe however, that there is not enough focus today on what truly makes a dojo. I worry that the traditions of dojo life are fading into history and that the value of the dojo itself is becoming less recognized. For this reason, I have chosen to share the Aikido Sketch Diary as a way to share what I believe makes a true Aikido dojo thrive and prosper. I hope that if you are truly interested in learning Aikido you will think more deeply about the value of the dojo itself and include it in your own shuygyo or practice.

오늘날, 아이키도는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은 여러 스타일로 대단히 세부적으로 지도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도장을 진정 도장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나는 도장의 전통이 역사 속에 사라져 결국 도장의 가치 자체가 잊혀질까 두렵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이키도 스케치 다이어리'를 공유하기로 결정하여 내가 진정한 아이키도 도장이 번영하고 번성하도록 만드는 것이라 믿는 것을 나누는 방법으로 선택했다. 나는 여러분이 아이키도를 배우는데 정말 관심이 있다면 도장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고 이를 여러분 자신의 수행에 포함하길 바란다.

This book has copyrights and all rights reserved. If you wish to obtain a copy of this text please contact Nippon Kan Headquarters at info@nippon-kan.org.

이 책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된다. 만일 이 텍스트의 카피를 갖고 싶으면 니폰칸 본부(info@nippon-kan.org)에 연락하길 바란다.

Gaku Homma
Nippon Kan Founder

홈마 가쿠(本間學)
니폰칸 창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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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호석 2009/02/26 10:22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그책 저도 재미있게 본적있습니다 / 글고 닉네임 도형의 경우 예전글부터 어투상 약간의 부조리(거만)를 느꼈는데 결국 키보드 워리어였네요.. 글자지만 말투부터 고치길... 선배님 차단시키시길 잘하셨습니다 ^^;

  2. 국진이빵 2009/02/26 17:53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인터넷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건가요? 저도 사서 읽고싶은데 비회원이라서요.

  3. 이호석 2009/02/28 16:27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응? 위의 이호석은 누구죠? 동명이인인가?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와 실제 이름이 같이 않다면 제 이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실수로 제 이름 적으신듯..

  4. 김정호 2009/03/01 01:44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매번 성주환님의 홈페이지에 방문해서 다양한 포스팅을 읽는 사람입니다.성주환님의 포스팅을 읽어보면 글의 구성이 꽉차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짜임새 있는 글솜씨를 많이 본받아가며 제가 글을 쓰는 방법도 조금씩 수정을 해봅니다.

    성주환님의 글에는 영어,일본어 등 외국어의 번역포스팅을 읽어볼때 느끼는것이 해석이 거의 번역수준인정도로 외국어실력이 매우 능숙하신것 같습니다.물론 예전 홈페이지의 글에서도 느꼈지만요.다름 아니라 저도 요즘 일본에 유학해보고싶은 내용들이 있어 일본어에 관심을 갖고 현재 일본어를 독학해보고 있습니다.그런데 학원에 다녀야 실력이 빨리 향상되는것인지 독학이라 더딘것인지 잘 모를만큼 좀 어려움이 있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성주환님께서도 아이키도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일본어를 독학해서 수준높은 일본어 실력을 얻게되신걸로 알고있어서 한번 여쭤보게되네요..전 현재 히라가나를 완전히 익히질 못했는데요.눈에 제대로 익지않은 느낌이거든요.히라가나 글자중 아무글자나 딱 집어서 뭐냐 라면 바로 답이 떠오르질 않아요.그래서 조언을 좀 받았는데 히라가나가 가장 중요하므로 가타가나까지 같이 외우려하지말고 히라가나만 완벽하게 마스터하라고 하더라구요.

    문장을 읽어가면서 모르는 히라가나는 써가면서 일일이 외워서 익히라고 해서 그렇게 해보니 조금 나아진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여전히 어려운 느낌을 지울수가없습니다.분명 사람들은 일본어가 한국인이 배우기 가장 쉬운 외국어다,일본어 배우기 정말 쉬운데 왜 어렵다고 하는지 이해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어서 제가 일본어 난 공부하는게 어렵다고 해도 그게 잘 납득되지않나 보더라구요.성주환님께선 제 현재 일본어 위치에서 제가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일본어가 처음에 공부할땐 남들이 흔히 얘기하듯이 쉬운게 당연하고 어려운게 오히려 이상한걸까요?

    남들이 전부 쉽다고 하는 일본어가 저한테만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고 있어서 처음엔 의욕을 잃을정도였는데 지금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하고있거든요.하지만 남들은 쉬운데 저만 어려운것같아 약간의 좌절감이 아직 남아있어서 이렇게 성주환님의 홈페이지에서 쌩뚱맞은 일본어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그럼 좋은 주말 보내시고 한주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 aikidokr 2009/03/01 11:41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김정호님께서 제 일본어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해주셨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일본어는 정식교육을 받은 분들에 비해 무도 분야로 '편향'되어 있는 편입니다. 뉴스나 드라마 정도를 청취하는데에는 별 무리가 없지만, 막상 일상단어에서 막혀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유는 역시나 한 분야에 대한 관심에 따른 독학이기 때문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님의 질문에 제가 어떤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오만일 듯 하고, 제가 일본어를 익힌 과정을 설명드릴테니 김정호님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 * *

      제가 일본어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고2때 일본에서 개최된 보이스카웃 대회에 다녀온 후였습니다. 일본어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 및 기념품을 겸해서 만화책을 몇 권 사왔습니다. 그런데 히라가나와 가타가나가 정말 '안 외워져서' 곧 때려치웠습니다. 일본어는 저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대학3학년(1997년)에 아이키도를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어를 '정말 알고 싶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이키도는 국내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무술이었기 때문에 정보가 절대 부족했습니다. 영문서적도 찾아보기는 했지만, 일본무술이니까 영어, 한국어 등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고 싶다는 욕구가 컸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실패한 경험 때문에 선뜻 손을 대지 못하다가 우연히 광화문 교보문고 외서관에서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의 아이키도 책을 발견하고는 무턱대고 사버렸습니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몇 번을 '그림만' 봤습니다. 그러다가 아이키도 기술 명칭을 써놓은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영문본을 통해 아이키도의 일본어 명칭은 모두 외운 상태였기에 '1대1로 대입'시켜봤습니다. 예를 들어 'Katatetori(엇서 한손잡기)'와 '片手取り(かたてとり)'를 보면서 'Ka=か''ta=た'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니까 히라가나와 한자의 훈독법을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외우려던 것은 아니고, 그냥 퍼즐을 푸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진짜 일본어를 공부해봐야 겠다는 생각에 책을 몇 권 샀습니다. '1주일만 하면 일본어 이규형만큼 한다''신 일본어 첫걸음' 등 '초심자 중에서도 초심자'용이었습니다. 위 책들을 통해 히라가나, 가타가나, 기본단어 및 문법을 익혔습니다. 앞서 '퍼즐'을 풀면서 '대충' 알고 있었기에 더 쉽게 외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종로3가를 걷다가 가판대에서 당시 유행하던 해적판 만화영화cd를 샀는데, '블랙잭' 극장판이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돌려보다보니 일본어 대사와 한국어 자막을 자연스레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어를 듣고 말하는 법을 '대충' 익히게 되었습니다.

      일본어를 통역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98년인가 99년인가 전국연무대회 개최시 어떤 일본어를 잘하는 분을 통역으로 모셨는데, 이 분이 선생의 설명을 전혀 통역하지 못했습니다. 아이키도 용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저는 기본 단어는 잘 모르면서도 아이키도 용어는 다 외우고 있던 상태여서 선생의 설명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통역의 바통을 넘겨 받는 만용을 저질렀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서툴렀겠지만, 그것이 매번 쌓이면서 일본어를 한국어로 포인트를 집어내면서 통역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97년부터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아이키도에 대한 영어 및 일본어 자료를 번역하여 게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어 실력'이란 걸 통감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이를 우리말로 '문자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원문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를 찾기 위해 영한,한영,일한,한일,국어사전을 모두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쌓이다 보니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도 함께 변해갔습니다. 제가 '비문(非文)'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문은 한국어로의 번역이든 외국어로의 번역이든 상관 없이 정말 힘든데, 이는 대부분 '문장 자체가 의미,구조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화자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정리가 안 된 경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좋은 문장은 외국어로 가장 쉽게 번역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 *

      주변 사람들이 외국어 공부에 대해 물어보면 저는 '문어발식 공부''즐기는 공부''아기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과 똑같이'라고 말합니다. 아이키도라는 주제를 통해서 여러 매체(동영상, 서적, 만화, 영화)를 이용하면서 즐기고,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걸 즐기고, 번역을 해보고, 모르면 넘어가기도 하고 '부담없이' 했습니다. 외국어 공부를 목적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어 1급 딴 후배보다 자격증 하나 없는 제가 일본인과 대화를 잘 하는 것은, 제가 이 후배보다 단어나 문법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한정된 분량의 단어를 적절히 잘 배합해서 쓰는 법이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제가 근무하는 경찰서에서 행정인턴 채용 인터뷰를 할 때 제가 외국어 능력자 면접관을 했습니다. 피면접자는 토익 만점자였습니다. 점수로만 따지면 저보다 훨씬 낫지요. 다른 면접관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영어로 해보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묵비권'을 뜻하는 영단어를 모른다며 가르쳐달라는 피면접자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묵비권'은 전문용어일 수도 있으므로, 피면접자의 말도 '전문 통역관의 입장에서는' 틀린 게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묵비권'을 뜻하는 영단어를 모른다고 통역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묵비권'을 '묵비할 권리'->'입을 다물 권리''조용히 있을 권리'등으로 즉시 '동일한 뜻의 쉬운 단어 조합'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묵비권'의 영어는 'the right to remain silent'(조용히 있을 권리)입니다.
      * * *

      글이 길어졌습니다. 김정호님의 질문에 벗어난 내용도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이곳을 찾아주시는 다른 분들께서도 이글을 읽고 '참고'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5. 권양조 2009/03/02 08:14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전에도 전철에서 공부하신 방법을 말씀해 주셨지만 여기서 자세히 알게 되니 많은 도움이 될것 같네요~~세미나때 뵙겠습니다~

  6. aikidokr 2009/03/02 23:23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도.형.'이라는 이름의 댓글이 하나 올라온 것을 삭제했습니다. 누구인지는 지난 며칠간 이곳을 방문하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그외에도 '도형.''형식'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을 달았던 흔적이 있군요.

    '도형'의 댓글들은 공지없이 삭제하겠다고 했음에도 이렇게 다시 밝히는 것은;

    '도형의 글들이 없어졌군요. 게시판이 한결 깨끗하고 보기 좋군요.'라고 써서 실제 '이호석'으로부터 항의받은 '이호석'과 '도형','도.형.' 그리고 댓글을 달았다가 곧 삭제한 '도형.''형식'은 모두 동일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에 남겨놓은 댓글만으로 보면 '도형'이라는 닉이 '이호석'의 이름을 대신 쓰며 자신의 댓글을 스스로 지워놓고는 자기 글이 모두 없어지니 깨끗하니 보기 좋다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데, 지운 댓글들까지 연결해서 함께 읽어 보면 비아냥의 글입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닉에 '.'몇 개 집어넣어 새로 댓글을 다는 식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냥 가만히 있다고 모를 거라 생각할 정도로 수준이 낮은 건지, 정말 무례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호석' 댓글들까지의 글의 흐름을 보고 있자면, '도형'은 제가 경멸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제가 넷상에서 '경멸'이라는 극한 표현까지 사용하는 건 수년만에 처음입니다.
    * * *

    '도형'님이 지금까지 올렸던 댓글이나 썻다가 지운 댓글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댓글을 달지 않길 바랍니다. 얼굴 안보인다고 비아냥이나 무례한 행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그냥 이곳에 관심 끊어주길 바랍니다. 10년 전과는 달리 요즘은 국내에도 아이키도 관련 사이트 많습니다.

  7. 김정호 2009/03/03 00:04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성주환님의 상세하고 정성스런 답장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성주환님께서도 일본어를 처음 배우실때 일본어가 어려워 맞지않는다고 생각하셨다니 정말 의외입니다.왜냐하면 저도 지금 일본어를 독학해보고 있지만 히라가나 가타가나 둘다 잘 안외워질 뿐더러,설령 외우더라도 곧바로 드는 생각은 '이걸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거야?' 라는 질문만 스스로에게 던져질뿐,벽에 가로막힌듯한 느낌 외엔 일본어를 학습하고자 하는 욕구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었습니다.

    너무 짜증이 나서 공부하던 일본어 책을 찢어버리거나 집어던져버리는 상상을 수도없이 하면서 일본어 공부에서 느껴지는 짜증스러움을 해소할뿐이었습니다.거기에 다른사람들은 일본어를 어려워하는 저한테 되려 난 쉽던데,공부 시작한지 꽤됬는데 지금정도면 한글쓰듯이 쓸수있어야되는데 왜그러냐? 는 질문을 받으니 때려치우고싶은 생각만 들었거든요.

    하지만 일본에 제가 깊은 관심을 갖고있는 분야들이 전문적인 토양을 형성하고 있고 그에 적합한 스승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는 일본어를 공부하기 전에 '좋다,몇년뒤에는 반드시 일본에 가서 저 사람들에게 배움을 청하겠다'라는 생각을 다짐하게 되었고 그래서 시작한 일본어 독학이었고 도중에 정말 짜증스러움에 성질이 급한 제가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그래도 포기할수 없다 다시 시작해보자 라는 의지를 더 불태울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제 개인적인 배움에 대한 갈증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보게 됩니다.

    성주환님께서 아이키도 일본서적을 구입해서 그림만 봤다는 말씀이 저한테 와닿습니다.저도 개인적인 취미로 구입한 일본서적들이 여러권 있습니다.'일본어를 잘하게 된 후에 구입해도 될것을 왜 미리 구입해놓냐? 어차피 읽지도 못할거면서'라는 핀잔도 몇번 받아봤지만 제가 일어 한개도 모르면서 미리 일본 중고원서를 구입한 이유는 일어는 시간지남에 따라 얼마든지 잘할 자신이 있지만 저 책들은 시간이 지나도 재고가 남아있을 보장이 없을뿐더러 만약 재고가 품절된다면 저 책들을 다시 찾아서 구입을 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입니다.(구입을 놓쳐 현재로선 어디에서 구입할지 막막한 아쉬운(?)책들도 있습니다.제목만 대충 안다는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원하는 서적들은 그것이 영어던 일어던 일단 무조건 구입을 해서 보관부터 해둡니다.그래서 현재 저한테는 책의 사진과 그림 그리고 고맙게도 영어단어로 쓰여있는 설명부분만 구경하고 있을뿐 나머지는 손대지 못하고 있는 책들이 몇권 있습니다.

    물론 몇년뒤에 제가 일본에 가서 찾아봐야할 책들도 있지만 그 책들은 구입했을때 어떤 어려움없이 국내서적처럼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읽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외국어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무엇보다 제가 관심두고 있는 취미분야들은 그중엔 복싱,무술 같은 운동분야도 관심이 매우 깊지만 다른쪽도 취미여도 '전문적인' 프로에 버금가는 실력을 쌓기위해서는 외국어들이 필수더군요.

    그래서 저는 현대에는 무엇이던 취미로 즐기더라도 깊게 알기 위해선 외국어실력은 빠질 수 없는 양념으로 자리잡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원래 성주환님께서 아이키도의 매력에 빠져 일어를 독학하여 수준급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나도 그렇게 해보자 란 생각도 분명히 작용하였습니다.성주환님께서 아이키도에 투자한 열정만큼 나도 열정의 온도를 최고로 높여보면 분명 저분이 보유한 현재의 지식체계,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지식,실력의 덩치를 나도 내 취미에서 저런 성장을 이룰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주환님의 홈페이지는 제 즐겨찾기에 저장해두어 틈틈히 말없이 방문해서 올라오는 포스팅을 읽어보면서 여러 공감을 획득하고 있습니다.물론 예전 홈페이지를 따로 운영하실 적에 몇개의 글을 올려보고 제가 생각해본 주제를 질문을 드리기도 하면서 성주환님의 글을 유심히 관찰을 하면서 말없이 배웠었지만요.

    상세하고 성의깊은 답장을 적어주셔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어 공부를 끈기있게 계속 해봐야겠네요.

    그럼 자주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MAYBE..

Trial & Error 2008/09/19 20:15

(From the article 'Iran Aikido’s 10th Anniversary Seminar; Homma Kancho Attending' by Gaku Homma sensei)
http://nippon-kan.org/dojo_news/08/may-july/08_may-july.html#armyranger
(홈마 선생의 글 'Iran Aikido’s 10th Anniversary Seminar; Homma Kancho Attending'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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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When I visited Iran last year for the first time, some people at Nippon Kan Headquarters were worried that MAYBE I would have trouble re-entering the United States if I had traveled to Iran. Some people were worried that MAYBE I would not be able to ever travel to Israel or other nations or that MAYBE I would become a person of interest for US Intelligence. After this first trip, I did find that I attracted a little more attention than usual passing through immigrations upon my return to the United States.

I DO KNOW that the positive stories and messages I relayed to students and friends after my return from Iran last year went along way towards dispelling their fears. This year when I prepared for this second trip to Iran, no one worried about me. In fact, some of my students seriously wanted to accompany me on this trip!

Just one MAYBE casts doubt, igniting the fears that causes the kingdom to shut its own castle gates (Rouyo).

Just one MAYBE causes the kingdom to shut off access to another’s castle; isolating the other castle through sanctions (Hyoryozeme).

Acting on fears of what MAY BE can actually result in those fears becoming reality.

It is always important to be prepared, but remaining open and communicating freely is the best solution for making what MAY BE into what CAN BE peaceful and beneficial for all.


내가 이란을 작년 처음 방문했을 때, 니폰칸의 몇몇은 나의 이란 방문 후 '아마도' 미국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몇몇은 '아마도' 내가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에 갈 수 없거나 '아마도' 미국 정보국의 관심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이 첫 방문 이후 미국에 돌아왔을 때, 입국관리소에서 평소보다 약간 많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분명 알 수 있었다.

내가 정말로 아는 건 작년에 이란에서 돌아와서 학생들과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까지 미쳤다는 것이다. 올해 이란행을 두 번째로 준비할 때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 중 몇몇은 나와 동행하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겨우  하나의 '아마도(maybe)'가 우려를 낳고, 두려움을 이끌어 성문을 닫아버린 왕국을 초래한다.

겨우 하나의 '아마도'가 왕국이 다른 성으로의 진출을 막는 결과를 가져와 편을 갈라 그 다른 성을 고립시킨다.

'아마도'에 근거한 공포에 따른 행동은 실제로 그 공포가 현실로 변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방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 이 '아마도(maybe)'를 모두에게 평화와 이익을 '가능하게 하는(can be)' 최선의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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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spect is all yours, Homma sensei.
홈마 선생님, 존경합니다.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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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호석 2008/09/23 16:30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아. . . 감동입니다. . . 정말 대단하십니다

I want to go~!!!!

Trial & Error 2008/01/15 10:23

방금 니폰칸 부회장인 에밀리 부쉬 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번 달 말로 예정된 홈마 선생의 필리핀 민다나오 행에 동행할 수 없어 너무나 죄송하다고. 홈마 선생의 초대에는 너무나 감사드린다고.
Just sent a reply to Ms. Emily Busch, a vice-president of Nippon Kan. Saying I'm not available to accompany Homma sensei's visit to Mindanao, Philippines. I'm so sorry and also feel very honored for his invitation.

비행기표도 홈마 선생께서 내주신다는데~! 체재비만 부담하면 되는데~!
He would pay the air-fare~! I only have to pay the stay~!

직장만 아니라면, 바로 따라갈텐데~!
Why this *beep* work-place won't let me go!

필리핀행 캔슬했다는 말에 와이프는 왜 안가냐며 타박이다..
My wife blames me for not going there hearing I abandoned it.

나도 가고 싶다구!
I also want to go!


p.s.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 역시 오랜 이슬람 과격 독립파에 의해 오랜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에도 이 지역을 통과하던 필리핀 해병대 20여명이 습격을 받아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현지인들을 위한 의료활동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홈마 선생은 작년에 미군 의료진과 함께 민다나오 지역을 다녀오셨다. 물론 민다나오는 거대한 섬으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한 정말 아름다운 섬이라고.
p.s. Mindanao, Philippines is the long-troublesome area by the extreme islamic militia. Last year also more than 20 marines were ambushed and brutally killed there. Medical care is needed for locals, Homma seseni visited the area with US army medical operation. Of course, Midanao is a huge and beautiful island where the troublesome area is so small.


민다나오 지역에도 아이키도 도장이 있다.
There is a Aikido dojo in Mindanao too.
http://www.nippon-kan.org/dojo_news/07/jan-mar/07_jan-mar.html#philippines
Mindanao Aikido Propagation Center students.

홈마 선생의 민다나오 방문을 다룬 글 2개의 링크;(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Links for 2 articles on Homma sensei's visit to Mindanao;
http://www.nippon-kan.org/senseis_articles/07/earth_and_sky/earth_and_sky.html
http://www.nippon-kan.org/senseis_articles/07/true_mission/true_mission.html
The dojo in Marawi is an important gathering place.
Local villagers gather for medical attention.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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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진이빵 2008/01/16 02:45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번역기 돌려봤는데 뭔소린지 거의 못알아 듣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