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24
다음은 용병 출신이자 PDS(Personal Deffence System)의 주창자인 모리 모토사다(모리인터내셔널 대표)의 간합(間合) 강의 동영상을 번역한 것. 우연히 회랑 님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그의 강의 동영상이 매우 좋은 내용이라 생각되어, 구술을 통째로 번역하는 노가다를 감행. 동영상은 퍼올 수 없으므로 다음 주소를 방문하여 아래 번역문과 함께 보실 것.
국내 '경호~''호신~'따위 붙인 무술들이 이 정도 개념의 반만이라도 보인다면 지난번 블로그 글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http://blog.naver.com/hcs2539?Redirect=Log&logNo=130006306201

자, 우선 진짜 간합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10m, 그것이 제 롱(long)간합입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이 저기 있습니다. 저기에 신경을 집중하지만 우선은 5, 10%이겠지요. 다음은 더 가까운 걸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5m가 된다면, 저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지요. 이것은 저 사람이 좀 더 위험해졌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상대에 대한 위험도를 더 높입니다. 50%. 이젠 이쪽에서도 대비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1m. 이것이 쇼트(short) 간합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쪽도 준비를 합니다. 상대가 덤벼들어도 바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 오더라도. 그만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이쪽이 유리하다는 것이죠.

이것이 무도라고 생각하면 이 거리(1m)부터 시작하는데, 이게 우선 통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상대가 뭔가를 숨겨쥐고 있을 때.

(상대에게) 자, 10m로 돌아가세요. 예를 들어 이런 상태에서 말입니다. 10m의 간합에서 필요한 것은, 특히 '무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흉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보자면 상대의 왼손이 무릎 부위 포켓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때문에 제 주의는 상대가 아니라 상대의 무릎 부위에 있습니다.

상대가 이대로 다가온다고 해봅시다. 당연히 저의 위험도도 훨씬 상승합니다. (상대를 향해 손을 들어 지시하듯)스톱! 여기서도 제 신경은 주머니에 가있습니다. 이게 무도라면 (흉기를 미리 빼든 상대가 가깝게 접근해 있는 상황)벌써 흉기를 이런 상태로 빼들고 찔러들거나 하겠지만, 이런 것은 실제로는 우선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여기에 숨긴 채로 그대로 이런 상태로 팟 하고 꺼내는 것이 현실의 세계입니다.(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한쪽 손에 숨긴 나이프를 갑자기 꺼내어 목덜미에 들이댐) 그러므로 저희들은 간합을 우선 10m, 5m, 1m의 롱, 미들, 쇼트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자, 지금의 간합은 실제로 여러가지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무기를 들었다든지, 나이프를 들었다 하는 경우에 매우 중요한 포석이 됩니다. 예를 들면 무도에서 이런 날붙이를 상대하는 방법, 예를 들면 이런 상태(가까운 간합에서 상대가 칼을 들고 대치)에서 반드시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상대가 있고, 처리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 상대가 찔러오고 이를 그대로 되받는다. 이것이 보통의 무도가 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경우, (상대가 칼을 집어넣으려 하자) 아, 다시 꺼내세요. 이런 상황까지 자신을 빠뜨려버리는 사람이 있냐하면 아마도 없습니다. 나이프를 꺼내들고 슬렁슬렁 오고 있는 인간을, 스스로 저걸 뺏자고 하는 건 바보를 빼고는 아마도 없습니다.

실제로 범죄를 일으키려고 하거나 흉기를 든 사람은 그걸 숨깁니다. 흉기를 숨겨서 들고와서 가까이 다가와서 (상대의 목을 향해) 빼듭니다. 실제로는. 이것이 현실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미들(5m)의 경우. 이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무릎 부위(칼을 숨긴 포켓)의 위치. 이게 매우 중요하지요. 척 하고 봐도 무릎 부위에 뭔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상태에서 다가오면 스톱!(손을 들어 오지말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상대를 멈추고 손끝으로 무릎부위를 가리키며) 무릎부위. 보여봐. 이런 식으로 우선 최초의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래도 멈추지 않으면 분명 뭔가를 들고 있다는 게 확실해지지요. 이게 좀 더 가깝게 다가온다. 그럼 이쪽도 경계합니다. 그래서 뭔가를 꺼내들어도 그대로 (칼을 찔러오는 상대를 확 밀치며) 바로 도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전격투술의 간합입니다. 특히 흉기를 들었을 때 매우 유효합니다.






모리 모토사다에 관련한 내용은 본 홈페이지의 텍스트 자료실 107번 '여성에게 알맞는 호신술은 무엇일까요?'에도 있음.

또한, 모리 씨는 유명한 게임인 '메탈기어 솔리드'의 군사자문과 모션캡쳐를 담당하기도 하였음. 다음 주소는 그의 인터뷰 및 프로필. CQC(Close Quarter Combat)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볼 수 있음.
http://konami.jp/gs/game/mgs3/korean/system_cqc.html
http://www.gamerz.co.kr/news/news_view.asp?idx=51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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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8


타다 히로시 9단의 글 중에서;

Beginners should avoid the following movements and habits listed.
초심자는 다음의 습관과 움직임을 지양해야 한다.
The List of Bad Movements: 나쁜 습관
1. Letting your mind confront the enemy. 적에게 의식을 빼앗기는 것.
2. Dragging your feet. 발을 끄는 것
3. Dull strike 허투른 공격
4. Loose grip 헐겁게 잡는 것
5. Having doubts about the enemy. 적에 대해 의심하는 것
6. Feeling restless by trying to hurry while having too much concentration on the details of the movements. 동작의 세부사항을 너무 신경쓰느라 서두르려다가 조급함을 느끼는 것
7. Breaking the rhythm. 리듬이 깨지는 것
8. Harboring anxiety. 불안해하는 것
9. Bending forward at the waist. 허리를 앞으로 숙이는 것
10. Feeling tense in the shoulders. 어깨에 긴장을 느끼는 것
11. Tense body 뻣뻣한 몸
12. Trying to look good 멋있어 보이려는 것

위 12가지 나쁜 습관을 버리도록 노력할 것. 쉽지않을 것임.

Practice to acquire a flexible mind. 유연한 사고를 얻기위해 수련할 것

The List of Good Movements: 좋은 습관들
1. Clear and sharp sirike 깔끔하고 날카로운 공격
2. Speedy and dexterous footwork 빠르고 민첩한 발놀림
3. Having gracefulness in movement. 움직임 속에 우아함을 갖는 것
4. Unconstrained movement 자유로운 움직임
5. Strong will to dedicate yourself in to trainings. 수련에 정진하겠다는 강한 의지
6. Moving without hesitation.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7. Relaxing body and having no tension. 몸의 긴장을 풀고 불안해하지 말 것
8. Natural, upright posture 자연스럽고 꼿꼿한 자세
9. Relaxed shoulders 긴장을 푼 어깨
10. Striking without rhythm. 리듬 없이 공격.
11. Having perfect control over your body. 자신의 몸에 대해 완벽히 콘트롤하기.
12. Having a free and pure mind. 자유롭고 깨끗한 마음을 갖기

12가지 습관들은 좋은 습관들이다. 마음이 고정되었을 때, 동작은 어색해진다. 모든 나쁜 습관은 당신의 마음이 고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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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록은 없다.

하지만,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이
. 1941년 해군장군 다케시타 이사무의 천거로 어전 연무를 행했다는 기록(당시 받기는 시오다 고조, 유카와 츠토무)-하지만 당일 천황은 배석하지 않고, 대신 미사카, 타카마츠, 치치부 왕자들이 배석.
. 1942년 만주에서 청조 마지막 황제 부의가 참석한 가운데 연무를 행했다는 기록
. 도야마 군사학교, 나카노 군사학교, 해군 사관학교에서 지도하였으며, 해군학교 생도 중에 당시 일본 천황이었던 히토히로의 동생인 타카마츠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기록
. 그외 역시 히토히로 천황의 동생인 다케다, 치치부, 그리고 타카마츠 왕자의 여섯 자녀 등을 지도했다는 기록.

등등은 남아 있다.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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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무예동과 다음 인법체술 카페에서 활동하시는 '할수없지'님의 글입니다.
텍스트 자료실 113번글도 역시 위 분의 글입니다.
생각할 거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유술 - 秘技가 없는 세상
번호 : 45   글쓴이 : halsooupji
조회 : 19   스크랩 : 0   날짜 : 2006.04.05 08:37
소위 말하는 "실전에 강한 무술"이란, 어떤 무술일까요?
한때는 단일 무술만으로도 충분히 강함을 증명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만,
요즘같은 시대는 타격기와 유술을 병행한 소위, "종합무술"식의 수련을 하지 않으면 격투에서 절대적인 우위는 유지할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수련자의 무술베이스가 타격기가 되었던 유술기가 되었던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푸른 눈의 서양인들에게는 경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태권도의 가공할 발기술,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마술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가라테의 맨손 벽돌격파.
그리고, 체구가 작은 동양인이 거구의 서양 장사들을 유린하는 "물리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유도 기술. 이러한 동양의 비기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홍보와 전파에 의하여 전세계인에게 매우 익숙한 격투의 고전이 된지 오래입니다.
브라질리언 쥬짓츠의 등장또한, 이러한 선대 무술들과 동일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발달된 메스미디어 덕택에 선대들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보급,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브라질리언 쥬짓츠를 배우는 일반 수련생들이 그 단일 무술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싶다면 별로 달가운 일일수는 없겠지요.
호이스 그레이시의 UFC시합. A급 격투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기세등등하던 파이터들이 별로 강해보이지도 않는 호이스에 의해 차례차례로 탭아웃 당했으며, 경기를 관전하는 대부분의 관중들도 지금 도대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호쾌한 격투기를 보러온 일반관중들에게 있어서는 이해불능을 넘어서서 짜증이 날만한 일이었지요. 그레이시가 이길때마다 관계자들이 아닌 일반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연발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던 바로 이때가 브라질리언 쥬짓츠의 황금기였습니다. 말 그대로 "비기(秘技)"였던 것이지요.
그럼 이러한 현상이 그레이시 쥬짓츠에서만 일어났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최영의씨가 가라테 기술로 미국에서 거구의 격투가들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릴때에도 마찬가지로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빗발쳤습니다. 그러고보면, 가라테/태권도/쿵후 등의 타격기의 신비적인 우위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무술을 수련하면,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수련자들도 거구의 근육질 프로레슬러를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한 환타지는 발차기 격기를 수련하는 모든 일반 수련자들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었지요. 숙련된 발은 손보다 3배에서 5배 가까운 위력을 발휘한다. 고로, 자신은 멋진 발차기로 거구의 근육질 프로레슬러나 복서를 쓰러뜨릴 수 있다.
마찬가지의 믿음이 지금 그레이시 유술이나 그래플링 수련자들 사이에서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파워풀한 발차기로 거구의 레슬러를 쓰러뜨리는 것도 근거없는 믿음은 아니지요) 예전같으면 무슨 기술을 걸어도 도저히 꼼짝할것 같지도 않던 완력을 가진 상대방에게서 탭을 받아내게 되었을때의 기쁨...
예전 같으면 필사적으로 서서 싸우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그라운드로 끌고 들어가려하는 자신의 변화...
저도 사도관에서 유술적인 몸쓰는 법을 터득했을때는, 타격기보단 유술기를 자기의 주특기로 하고 싶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느꼈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종합 격투기룰의 시합에 나간 이후로 느낀점은, 유술은 복싱의 펀치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누구나 구사하는 기술에 불과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유술을 전혀 터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래플러와 맞붙으면 상당한 고전을 하겠지만, 유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테이크 다운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특기인 타격기술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베이스가 유술인 사람들이 종합 격투기룰에서 마음껏 유술기술을 쓰고 싶다면, 당연히 유술을 맘놓고 쓸 수 있을 만큼 타격기를 수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종합격투기라는 시합... 상당히 일반 막싸움과 비슷합니다. 아마츄어 시합이 되면 될수록 더 그렇습니다.
처음에 시합을 한번 하고나면 싸움하고나서 온몸이 쑤시고 아픈것과 동일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스파링을 하고 그렇게 운동을 했어도, 역시 실전이란 아픈것입니다. 유술가들이건, 타격계 무술가들이건 한번 해보면 아, 실전이란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특히 요즘 들어서는, 그라운드에서 유술만으로 화려한 공방전을 벌이는 일은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유술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며, 포지션 싸움과 병행해서 타격기를 쓰기때문에, 룰에 따라서는 결국은 미친듯이 손으로 발로, 팔굽으로 상대방을 치게 되며, 본능적으로 타격의 센스가 좋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의 얼굴을 완전히 짓이겨놓기도 합니다. 저도 근 2년간 수련의 반이상을 유술에 할애할 정도로 상당히 집중적으로 수련했지만, 암바를 걸려다가 여의치 않게되자 발뒷축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짓이겨버린 적도 있습니다. 실전이란 그런 것입니다. 유술 스파링이라면 물론 암바를 시도하다가 트라이앵글 쵸크, 치킨윙 등... 여러가지 술기를 계속해서 내겠지만, 실전에선 그런 시도보단 효과적인 타격이 훨씬 유효할때가 더 많습니다.
그레이시 유술, 매우 효과적인 무술임에는 틀림없으며 수련을 통해 약한자는 반드시 강하게 변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면은 그레이시 유술뿐만이 아니라, 풀컨택트를 하는 다른 무술또한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게다가, 그레이시 유술은 지금 세상에선 더 이상 비기(泌技)가 아닙니다. 종합격투에 마음을 두고 있는 수련자들이라면 유파를 막론하고 누구나 수련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유술 수련만으론 상대적인 우위를 점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막싸움"에서 일반 수련자의 유술 기술이 얼마만큼 효과를 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친 말처럼 날뛰는 상대방에게 몇번이나 안면공격을 당해서 피투성이가 되거나 심지어는 이빨이 몇개 나간 상태에서도 엘리오나 호이스처럼 이를 악물고 침착하게 관절기를 걸 수 있는 일반 수련생들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하며, 그것이 무술이란 상품이 수련생들에게 부여하는 "믿음"인 것 입니다.
저는 유술을 좋아하며, 유술을 즐겨 수련하지만,  "같은 기간 수련했다면 유술이 강하다"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하는 유술 수련가들이 계시다면 묻고 싶습니다. 극진을 비롯한 풀컨택트 공수의 정권 "몸빵"을 견뎌본 적이 있습니까? 양손을 머리위에 놓고 동체를 오픈시킨채로 맨주먹의 보디 스트레이트와 훅을 인정사정없이 맞습니다. 처음에는 죽을 맛이지만, 나중에는 동체에 들어오는 펀치 정도는 일일이 손으로 방어하지 않아도 몸으로 흘릴 수 있게 됩니다. 무에타이의 로우킥, 가라테의 로우킥을 견뎌본 적이 있습니까? 제대로 로우킥을 차는 사람한테 맞으면, "아프다"라는 단어로는 그 느낌을 도저히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싸우고 싶은 투지가 있어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버리지요. 그리고 정신없이 들어오는 복서의 잽의 연타를 얼굴에 맞아 보셨습니까? 타격기를 경험하지 않은 일반 유술 수련자들이라면 절대로 방어할 수 없습니다. 일단 얼굴에 몇방 맞아 주고 나서, 파고 들어가서 이런 기술을 걸겠다라는 작전은, 정말 무수히 맞아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을 비롯해서, 소위 무술 좀 했다하는 사람들도 실전 싸움에서 선방으로 얼굴 몇방 정통으로 맞고도 싸움을 끈기있게 속행하는 사람은 저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때리고 차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격투 수단이며, 타격기의 무술들은 이러한 인간 본연의 무기를 강력한 흉기로 변신시킵니다. 최영의씨가 실전 격투로 명성을 날릴때, 상대방은 전부 가라테가였습니까? 태반이 유도가나 레슬러였으며, 그들은 막강한 정권지르기와 발차기 앞에 차례로 실려나갔습니다. 상대가 유도가나 레슬러였는데도 말입니다. 그 유명한 마에다 미츠요도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시연시에 무명의 사관생도의 레슬링에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주장격이었던 토미타는 패배했지요), 전설의 엘리오 그레이시도 기무라 마사히코의 강도관 유도에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유도나 레슬링이 가지는 강력함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만, 한때 그들이 타격기의 희생물이 될때가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타격기가 더 이상 그래플러를 쓰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타격기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미 타격기의 수련은 상식중의 상식처럼 되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타격기를 수련하지 않는 일반 그래플링 수련생들은 옛날 타격기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을 꿇던 거구 레슬러의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수련을 통해서 강해지는 것은 유술 뿐만이 아닙니다.
타격기는 타격기 나름대로의 어렵고 고된 수련이 있으며,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누구나 강하게 변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짧은 기간동안의 유술 수련을 통해 강해졌다면, 다른 유파의 사람들도 유술을 배우면 그만큼 짧은 기간안에 강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우 성가신 사실이지만요..
그리고, 타격계통의 근육과 그래플링의 근육, 즉 몸만들기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플링을 장시간 문제없이 지속할 수 있는 몸을 지닌 선수라도 킥복싱은 1라운드도 못버티고 마우스피스를 토합니다.
반대로, 킥복싱만 하던 선수들을 그래플링룰에 던져놓으면 금방 지쳐서 어쩔줄을 몰라하지요.
문제는 이 두가지를 다 해야 (말은 쉽지만...) 격투가의 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쪽 의 수련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까?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저는 가끔씩 컨디션이 나쁘거나 피로한 날에 도장에 갔을때, 사범께서 "오늘은 그래플링 수련이다"라고 말하면 속으로 만세를 부릅니다. 킥복싱을 수련하는 날이면 몸이 쉴수가 없으며 고통스럽지만, 그래플링은 그야말로 "젠틀 아트"이기 때문에 몇 라운드 풀로 돌아도 마지막 근력수련까지 여유 있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려운 수련은, 그만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한다는 사실은 잊으면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그레이시 유술은, 유혈낭자한 종합격투기보다는 올림픽종목의 정식등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결국, "실전 최강" 전략에서 명성을 얻은 그레이시들은 더 이상 헝그리한 아웃사이더로 남기보다는, "안전성"을 어필해서 유도처럼 올림픽 정식 종목의 지위를 얻고자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누구나 수련하기 쉽고 안전한 격투기이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에도 충분히 설득력은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욕심은... 그레이시 유술은 계속 비기로 남아줬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비기까지 안가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마케팅까지는 안해도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그레이시 유술 덕택에 전세계의 무술판도는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실전성"이란 단어. 어떻게보면 극진이 전세계를 향해 최초로 방아쇠를 당긴 테마이지만, 전세계에 존재하는 실전의 모든 비기가 공개된 작금...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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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와 유키요시 인터뷰 by 스탠리 프래닌(1987년)

사가와 유키요시 선생은 1902년 홋카이도 유베츠에서 태어났다. 그는 11세 때 다케다 소가쿠 밑에서 대동류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1932년 다케다로부터 교수대리를 수여받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스승을 보조하며 많은 지역을 순회했다. 다케다 소가쿠의 가장 탁월한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금년 85세이다. 사가와 선생의 믿을 수 없는 기술은 그의 오랜 수련경력의 결과이다. 현재 그는 도쿄 외곽의 고다이라 시에 있는 자택에 붙은 도장에서 지도하고 있다. 1987년 2월 20일, 아이키뉴스 스탭진은 2시간 반 동안 사가와 선생의 대동류 합기유술을 참관하였다. 다음은 이후 행해진 인터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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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뉴스; 선생님, 어디서 대동류의 수련을 시작하셨습니까?

사가와 선생; 홋카이도 유베츠에서. 나의 아버지 사가와 네노키치가 다케다 선생의 지도를 받기 위해 도장을 지었다. 당시 아버지는 마을 의원이자 학교 고문이었고 가게를 운영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지은 도장에서 대동류 세미나가 열린 겁니까?

그렇다. 당시 나는 어린아이여서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세미나는 거기서 열렸다.

다른 곳에서 그러했듯 다케다 선생은 하루 7,8시간을 가르쳤나요?

3시간 이상이었던 것 같다.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도장에 배우러 왔다. 하지만, 점점 이 사람들이 줄다가, 아버지 혼자 남아 소가쿠 선생에게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러곤 선생은 세미나를 위해 다른 곳으로 가곤 했다. 그는 촌장이나 정치가 같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당신의 아버지가 호리카와 고도 선생의 아버지인 호리카와 타이소를 알았나요?

그렇다. 호리카와 타이소 씨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여관을 운영했고, 내 아버지는 잡화점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서로 알고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와 호리카와 씨는 같이 수련했나요?

같이 수련하긴 했지만, 내 아버지는 교수대리를 1914년 3월에 받았다. 타이소 씨는 그 이후에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아버지는 요시다 코타로와 우에시바 모리헤이와 어떤 관계가 있었나요?

둘 다 내 아버지 이후에 배우기 시작했다. 요시다 씨는 당시 엔가루에 살면서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었다. 우에시바 씨는 아버지의 가게에 다양한 거래를 하러 왔기에, 우에시바가 선생의 제자가 되기 전부터 그와 아버지는 서로 알고 있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처음으로 다케다 소가쿠 선생을 만났을 때 히사다 여관에 당신의 아버지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습니까?

난 당시 14세 였고 그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우에시바 씨가 요시다 코타로 씨의 소개로 처음 입문하였을 때 아버지는 히사다 여관에서 소가쿠의 수련생 몇몇을 가르치던 중이었다고 한다.

초기에 소가쿠 선생의 기술은 "대동류 유술"로 불리다가 후일 "대동류 합기유술"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명칭의 변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합기"라는 용어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메이지 시대 때부터 사용되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다케다 선생에게서 배운 기술들을 메모하는데 사용한 수첩이다. 여기 보면 여러 군데에 가타가나로 "합기를 건다"라고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913년 3월 14일에 적은 것이다. 아버지는 50세였고, 다케다 선생은 당시 55세였다. 그러므로 "합기"라는 용어는 당신이 말하는 시기보다 이전에 사용된 것이다. 다케다 선생은 가르칠 때 "합기유술"과 "유술"을 구분하였다.

다케다 선생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주시겠습니까?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0세 때였다. 다케다 선생은 국수나 우동을 직접 만들기를 좋아했다. 만들 때마다 너무 양이 많아서 다 못먹을 정도인데도, 그는 '더 먹어, 더 먹어!'라고 계속 말하곤 했다.(웃음) 다케다 선생은 나랑 내 여동생과 함께 목욕을 하기도 했다. 등을 너무 세게 밀어서 상당히 아팠다. 아이의 피부는 알다시피 매우 약한데도!(웃음)

다케다 선생은 단단한 근육을 가졌습니까?

아니, 그의 근육은 부드러웠다. 그의 팔은 대체로 부드러웠다. 하지만 팔뚝이 매우 굵었다. 다케다 선생은 아주 총명하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나는 사사키 료키치 선생에게서 오노하잇토류도 배웠다. 이런 연유로 사사키 선생과 다케다 선생이 서로 알게 되었다. 어느날 가을 축제의 일환으로 검술 시합이 있었다. 지역 축제여서 많은 검술가들이 홋카이도 전역에서 모였다. 사사키 선생이 출전하여 우승자가 되었다. 다케다 선생은 사사키 선생에게 "당기는 손목"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으므로 사용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사사키 선생은 자기는 이 기술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으므로 문제없다고 했다. 다케다 선생은 이 말을 듣고는 그에게 손목보호구를 차도록 하고는 대치했다. 사사키 선생이 "정안" 자세를 취하는 순간 다케다 선생은 오른손과 왼손으로 번갈아가며 손목 안쪽을 쳤는데, 사사키 선생으로서는 뒤로 물러나거나 피하며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마침내 사사키 선생은 얼굴이 파래지며 맞았음을 인정했다. 그가 보호구를 벗었을 때 손목 안쪽에 동전만한 자국이 나있었다.

다케다 선생도 보호구를 착용했나요?

아니, 그는 착용하지 않았다. 자국이 하나만 나있다는 것이 그가 똑같은 곳을 쳤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여러 유파의 무술의 극의를 득했다. 다케다 선생의 검은 매우 독창적이었고, 오른손이나 왼손으로 검을 다루는데 아주 능했다.

그가 한때 사사키바라 켄키치 선생의 제자였던 것으로 압니다만.

다케다 선생은 한 번도 네게 그가 사사키바라 도장에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사키바라 선생은 경시청을 가르쳤던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나? 이건 내 선생이기도 했던 코겐잇토류의 토미타 키사부로 선생에게서 들은 것이다. 당시 토미타 선생은 경시청에게 근무했고, 사사키바라 켄키치와 역시 경찰 사범이었던 북진일도류의 시모에 히데타로가 함께 훈련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후자가 기술에 있어 월등했다. 사사키바라 씨는 고정된 물체를 베는데 전문가였던 것 같다.

다케다 선생이 가르칠 때 부상이 있었는지?

아니, 없었다. 다케다 선생의 지도방식은 항상 실질적이었다. 그는 형(카타)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방식을 준수하고 있다.

다케다 선생은 오노하잇토류도 배운 것으로 압니다만.

후쿠시마 현 반게초에 있는 시부야 토마의 도장에서 수련한 것으로 안다. 그가 진지하게 배운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그의 검은 매우 독창적이었고, 자신만의 기술을 만드는데 많은 유파의 요소들을 결합했다. 또한, 다케다 선생은 형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의 기술들은 매우 실질적이었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기술을 가르쳤다.

다케다 선생이 "벽 통과하기"기술을 하는 걸 보거나 들은 바가 있습니까?

벽 통과 기술? 다케다 선생은 그런 기술은 한 번도 언급한 바가 없다. 한 번은 내가 선생이 "다다미 뒤집기(한 손바닥으로 다다미를 뒤집는 것)"를 할 줄 안다는 소문을 들어서 여쭤본 적이 있다. 그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일축했다. 실망스러웠다. 진짜로 할 줄 안다면 가르쳐달라고 할 작정이었는데.(웃음) 그가 그런 기술을 할 줄 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소가쿠 선생과 가노 지고로 선생과는 어떤 교류가 있었나요?

내가 아는 한 없다. 나는 다케다 선생의 집에 자주 머물렀지만, 한 번도 그런 관계는 들은 바가 없다.

다케다 선생을 자주 동행했나요?

다케다 선생이 각지에서 세미나를 열었을 때, 나는 가끔 조수로서 그와 동행했다. 우리는 홋카이도를 돌거나, 도쿄, 우라와, 오미야, 기타 각지를 여행했다. 소가쿠 선생이 히사 타쿠마의 그룹을 가르치기 위해 오사카에 가기 전에, 나는 그를 2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따라다녔다. 가정일이 있어서 오사카에는 가지 않았다.

아이키도계에서는 대동류와 관련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몇몇은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은 대동류를 잠깐만 배웠을 뿐이고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준 유파는 야규 신간류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이키도 기술의 발전을 보건데 대동류가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실은 명확하다. 다케다 선생은 아야베의 오모토교 센터에 머물며 가르친 적도 있다. 아버지에 따르면, 다케다 선생은 지도의 사례로 오모토교의 사람들에게서 좋은 검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목록이 수여되었나요?

4개의 목록이 있다. 하나는 118개조, 하나는 36개 기술, 하나는 84개 기술, 그리고 "개전의 권". 대동류 합기이도류 오의 같은 다른 목록도 몇 개 있다.

후일 호리카와 선생은 당신의 제자가 된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 다케다 선생의 제자 중 6명이 내 영명록에 이름을 남겼다. 호리카와 코도 씨, 사사키 효고 씨, 그리고 사토 세이시로를 포함한 이와테 현에서 온 다른 4명이 내 제자가 되었다. 이것들이 내 영명록들이다. 여기 호리카와 씨가 있다. 내용에는 "1950년 11월 11-12일, '쇼호노 테'를 가르침, 제1개조. 56세"라고 쓰여있다. 그는 아마 제4개조까지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수많은 영명록을 보면서)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수련했다니 대단합니다!

도쿄로 이사온 후에, 1년 중 절반은 지도하러 나가 있었다. 나는 항상 조수 없이 혼자 다녔다. 그래서 내 기술은 언제나 시험받았다.

당신의 영명록에 사인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유도, 검도, 거합도의 고단자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 현재의 기동대의 전신인 "예비대"와, 1952년 1월 17일에는 나카노 경찰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의 수석사범은 유도 9단인 쿠도 주조였다. 그가 영명록에 사인하지 않으면 안되겠냐고 청하기에 여기 그들을 위한 칸을 비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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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도장 수행시절>-2006/02/24일자 블로그
제가 본부도장에 입문하여 합기도의 수련을 시작한 것이 1955년이었습니다. 종전 후 10년된 때로 조금씩 세상이 안정되고 있었습니다만, 세간 일반에는 아직 식량난, 주택난의 시절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합기도는 세상에 알려져있지 않고, 전화로 불타 쫓겨난 사람들이 도장에서 임시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본부도장에서는 묵고 있는 젊은이들을 매우 관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대학생, 일하면서 수련하는 사람, 또 합기도 전문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낡아빠진 도장에 묵고 있었습니다. 돈은 없지만 뭔가 인생에 목적을 가진 개성이 풍부한, 약간 이상한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쟁 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 또는 당시 도장장이었던 기쇼마루 선생에게 지도를 받은 사람들의 아들 또는 지인들이었습니다. 기쇼마루 선생이 와세다 대학 출신이고 본부도장이 대학과 가까워서 와세다의 학생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꽤 진지하게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만, 다른 대학생은 의학부에 합격하고서도 피를 보는 것이 싫어서 중퇴하고, 마작 도박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거나, 닛쿄 대학생은 부모가 부자인지라, 모두들 도장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데 혼자서 모기장을 치고 자고 있거나 했습니다. 함께 도장에서 살고 있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태어난 곳도 살아온 일도 전혀 말하지 않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도장에 와서 '내제자가 되고 싶다'고 청했다가 거절당하니 도장현관에 며칠이고 앉아있어 기쇼마루 도장장도 마음이 약해져 허가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로 온지 3일이 지나자 짐을 놔둔 채로 없어진 사람도 꽤 있습니다.
저는 선거도 학구도 제1구, 도쿄 치요다구 구단의 도시출생,  대학은 걸어서 15분 거리입니다. 지금까지의 친구들과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들과 처음 대면한 겁니다. 합기도의 수련도 즐거웠지만, 일본 각지에서 온 개성 풍부한 내제자들과 함께 하는 생활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자택도 본부도장이 가까운지라 잘 때만 귀가하거나 말거나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느새 우에시바 기쇼마루 선생도 익숙해져 내제자와 완전히 같은 대우를 해주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전혀 모르는 우에시바 큰선생의 옛 내제자가 상경하자마자 도장에 와서, 여관 대신으로 자고 있다거나, 현관에서 좌선을 하고 있다거나 꽤 이상한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만주낭인(滿州浪人)이라 불리던 사람들입니다.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 살아남아 돌아왔으므로 근성은 깔려 있습니다만 방약무인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경악했던 것은 기쇼마루 도장장의 대리로 제가 수련지도를 할 때였습니다. 사범이 서는 자리 가운데서 거합을 시작하는 것에는 저도 놀랐습니다. 역시 저도 화가 치솟아 대선배임에도 못하게 했습니다만...
본부수행시절에 저는 세상에는 우에시바 큰선생을 비롯해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 일이 도장을 열어 합기도를 보급지도하고 있을 때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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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2일자 게시물 이동)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의 개인 블로그(http://shihan.exblog.jp/ )에 올라온 글을 번역게시합니다.
( 고바야시 도장 지도원들의 활동상황보고를 위한 블로그(http://blog.livedoor.jp/kobayashidojo/)에는 야마와키 선생이 지난 한국세미나에 대한 후기를 올려놓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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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1일

전국학생아이키도연무대회

어제 도쿄경제대학아이키도부에 지도하러 갔을 때, 부실의 게시판을 보니 2005년 11월 27일, 제45회 전국학생아이키도연무대회의 [연무 및 합동수련에 대한 주의사항]이 걸려 있었습니다. 내용은 연무에 대한 몇가지 일반적인 주의사항이었는데 6번에

연무에 피나 가짜칼 등을 사용하거나, 프로레슬링 기술 등을 서로 짜고 하는 경우 등, 연무대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연무는, 즉각 강제종료합니다.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도쿄경제대학아이키도부의 학생들이 그은 건지, 연맹이 그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절하게도 노란색 마커로 선까지 그어져 있었습니다.
상기의 주의사항이 적힌 것은 수회를 거듭한 연무회에서 학생들이 영화의 살진(殺陣, 칼싸움 등을 서로 합을 맞춘 것)흉내를 하거나 했는데, 그게 모교의 아이키도부를 돋보이게 하려고 점점 에스컬레이트하게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아이키도의 연무는 토리와 우케가 하나가 되어 행하기 때문에, 젊고 체력이 있는 학생들이 다소 연습을 쌓으면 신체조(新體操)나 영화의 살진같은 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피까지 나오는 연무가 나오리라곤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주의사항에 적혀있을 정도이니, 어딘가의 대학이 행한 적이 있겠지요. 무도의 연무와 활극의 쇼를 동일시해버린 듯 합니다.

저는 아이키도 본부도장에 1955년 4월에 입문했습니다. 아이키도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은 70세였습니다. 당시 이바라키현 이와마에 사시면서, 마음이 동하면 상경하셨습니다. 갑자기 수련중인 도장에 나타나셔서는, 기분내키는대로 신(神)에 대한 이야기, 고사기(古事記)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기술을 연무하셨습니다. 기술은 보여주기만 하시고, 설명은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젊은이들은 단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큰선생이 도장에 오셨을 때 입기(立技)를 수련하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좌기(座技)라면 방긋 웃으셨습니다. 다리`허리의 단련에는 좌기가 최고이니 앉은 기술이 자유로이 가능하면, 선 기술은 더 잘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리`허리의 단련 이것이 무도를 포함한 모든 운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전일본아이키도연무대회, 지구(地區) 연무대회, 도장개장, 그리고 기념대회 등 국내, 해외에서 매년 몇 번이고 연무할 기회가 있습니다. 제 연무는 기본 좌기, 반신반립 그리고 입기 기본 이외에는 연무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우케를 하는 상대도 그때 있는 사람을 쓰고, 기술을 사전에 맞추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연무대회뿐만 아니라 전일본아이키도연무대회에서도 똑같습니다. 연무는 어디까지나 기본을, 기본기 속에서 자신의 특징을 보일 수 있다면 진정한 연무가 됩니다. 기술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련의 성과를 내는 것에 철저히 할 따름입니다.
대학아이키도연맹 결성 때에 관여하고, 몇 군데의 대학아이키도부를 지도하고 있는 저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덧붙여서, 이번 연무대회에서는, 회장에 출장학교가 대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주를 부르러 가 주의받는 등의 서툰 일이 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실수는 프로그램에 도주 연무의 게재를 잊어버려, 격노를 샀던 듯 합니다. 학생아이키도부원들이여 기본을 잊지 말 것이며, 기술 이외에도 배울 것은 정말 많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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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6일자 게시물 이동)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510&PCode=0007&DataID=200601031407000165

위 링크의 글은 편집자의 첨삭에 의해 루퍼트 선생의 원문의 논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퍼트 선생의 글 원본을 이곳에 게재하여 사실을 바로 하고자 합니다.
p.s. 어느 분야든 문자화시키는 사람들의 책임감 부족이 아쉽습니다.

===============================
I wrote this:

       한국 도장에 가 보았더니,,,,

신기해 보이던 유도 도복을 처음으로 입은 때는 내가 12세였다.  영국사람인 내가 동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은 이유도 무술을 연마하면서부터였다.  1994년 한국에 왔을 때는 일본식 유도 유술 그리고 아이키도(일본식 합기도)를 14년 정도 연마했었다. 공항에서 내려와 며칠 안되어서 곧바로 동네 도장에 들려 내가 해 볼만한 무술이 있나 탐사에 나섰다.  처음으로 들린 곳은 합기도 도장이었다. 두 명의 청년들이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내가 연마 해 온 무술이 주로 일본무술이라는 것을 안 후에는 뭔가 모를 적개심을 품는 듯 했으며 샌드백을 마구 두들기고 있어서 조용히 빠져 나온 기억이 있다.
두 번째 도장도 합기도 도장이었는데 관장님 한 사람만 있었다.  그 사람은 스스로 합기도 검도 태권도의 달인이라고 했다. 20대처럼 보인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몇 분 후 젊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그들이 보여준 기술은 주로 발차기였는데 한 시간 내내 발차기 연습만 했다.  그들의 발차기 기술은 뛰어 났으며 나보다 유연성도 훨씬 좋았다.  같이 훈련 할 수 없었다.  여러 도장을 다녀 보았지만 한국에서 무술은  어린 학생이나  젊은 청년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30, 40대는 물론 50대 60대 그리고 여성들도 상당수가 같이 수련하는 곳이 많다.  여러 곳을 전전 하다가 마침내 동대문에서 성인들도 연마하는 합기도 도장을 찾았다.  그들은 내가 일본무술을 주로 연마 했다는 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수련시간에 발차기도 절반 정도만 했다.  그곳에는 배울 만한 점도 있어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었지만 이사를 하는 바람에 다시 어린 대학생들이 주로 오는 다른 유도도장으로 옮겨갔다.
우리의 첫 번째 대화는 유도가 어느 나라에서 비롯된 무술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 학생은 유도가 한국의 전통 무술이며 일제식민지 시절에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들여 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학생의 영어실력과 내 한국어 실력이 서로 속 시원한 대화를 하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잠시 후 그 학생은 백과 사전을 들고 와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유도는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씩씩대며 말했다.  가노 지고로라는 일본사람이 19세기에 만들어 낸 것이 유도라고 내가 말 하자 그는 자제력을 잃고 화를 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 무술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택견과 같은 한국 전통 무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무술역사에 관해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1500년 전 화랑도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요즘의 많은 학생들은 한국합기도는 20세기 일본 유술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고 태권도는 일본가라테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허탈해 하는 모습을 간혹 본다.  
요약하면 내가 경험한 한국에서의 도장모습은 나이가 들어도 평생 취미로 여기고 무술을 대하는 영국사람들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청년들이 잠시 한 때 재미로 배운다는 것이며 또 무술의 기원을 지나치게 따지며 일본무술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히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무술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국의 전통무술은 나름대로의 멋과 힘이 있고 다른 나라무술 또한 독특하고 배울 부분이 있으니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각기 다른 무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RMJ At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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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일자 게시물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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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발간 소식을 알려드렸던 루퍼트 아트킨손 선생의 저작 "Discovering Aikido: Principles for Practical Learning"의 서평이 클라크 베이트먼씨에 의해 별5개 만점에 4개를 받으며 Aikido Journal의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
다음은 해당 서평의 번역이며, 원문은 위 주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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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이키도의 발견: 실질적 수련을 위한 원칙들"
평자; 클라크 베이트먼 2005. 6. 4. 게시
저자; 루퍼트 M. J. 아트킨손
출판사; 크로우드 출판사(영국)
ISBN: 1861267401
가격; 14.99 파운드(약 27.16 달러)
페이지수; 176(소프트커버)

이것은 새로 출판된 책으로, 아이키도 저널 포럼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저자이자,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며 지도하는 아이키카이 스타일리스트가 쓴 것이다. 본 책은 이미 아이키도의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며, 띠를 어떻게 매는지나 하카마를 어떻게 개는지 따위를 말하느라 지면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아이키도 고유의 다양한 움직임 속의 역동성과 기교성을 세밀하게 설명하는 데 임한다.

준비운동, 자세, 호흡, 간합, 중심, 힘의 산출, 공격, 기타 여러 주제에 대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실제적'으로 논하고 있어, 중급 레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사실과 의견을 오가고 있는 듯 하나, 혼란스럽지는 않다. 저자는 능숙하게 훈련하는 법에 대한 확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이들은 글로써 독자 앞에 간결하게 제시된다. 책은 수많은 자세한 도표와 흑백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사진들은 자연의 숲을 배경으로 야외에서 찍은 것으로, 몇몇 사진들의 향상시키는 반면, 다른 것들은 덜 선명히 보이기도 한다.

위 책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기(氣)의 원리에 대해 어떠한 논의나 언급도 생략한 것이다. 마음과 호흡의 힘은 분명 기계적 힘의 산출만큼이나 많은 잉크를 소모하지만, 기의 개념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에 대한 논의가 조금 있었다면 책을 좀 더 균형잡히게 만들었겠지만, 평자 본인도 몇몇 아이키도인은 기를 공허하고 근거없는 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은 2단 배열이 눈에 조금 껄끄럽고, 잡지 형식의 종단 배열은 조금 부적절한 듯 하지만, 매우 쉽게 읽힌다. 하지만, 만일 이러한 것을 모두 접어둘 수 있다면, 다양한 것들이 제시되어 있어, 이 책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저자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이 책은 숙련된 수련생을 타겟으로 삼고 있으며, 단순히 또다른 '아이키도는 이런 것이다'책이 아니란 것이다. 이는 이 수준에서 지금까지 이미 수십번이나 언급되어 더이상의 꺼리가 없을 정도인지라, 이제는 더 이상의 아이키도에 대한 소개 수준의 책은 필요치 않다.

이 책은 조금 비싼데, 특히 배송료가 아마도 그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지만, 사견으로는, 돈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이 책은 진정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수시로 책장에서 꺼내어 재독, 삼독할 수 있는 책이다. 아마존과 여타 온라인 서점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고, 무술용품점에서는 당분간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으며, 당연하겠지만 헌책으로도 아직 나온 바가 없다.이 책을 당신의 서재에 추가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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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아이키도연맹의 대현 윤익암 관장과 함께 루퍼트 아트킨손 선생은 수련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윤익암 관장이 아이키도를 고바야시 선생의 가르침에 맞추어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반면, 루퍼트 선생은 위의 서평과 같이 기의 개념보다는 아이키도 자체를 실체적으로 분석하는 편입니다. 이는 어쩌면 동서양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해서 어느 한 쪽이 옳다 그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또한 두 분 모두 어느 한 쪽으로 무조건적으로 치우쳐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서 선생의 저작에 미력한 도움을 드린 입장에서 매우 기쁩니다.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p.s. 어쩌면 위 책의 정식 한국어 번역판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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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9일자 게시물 이동)

[과연, 난 왜 운동을 하는가? 강함인가? 건강인가? 왜?왜?]
자꾸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가 이 운동(aikido)을 하기 전에 검도,우슈,유도 여러가지운동을 접해 봤고, 또한, 강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도 연구해 봤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왜 환경과 스승의 중요성을 생각합니다.

예로, 전 대한검도를  6~7년를 해왔습니다. 그러던중 다리연골을 다쳐 과연, 이운동을 해야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관장님&선생님들을 찾아 대한검도를 할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으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다른유파(해동검도, 한국검도등등)에도 물어 보았지요.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신체의 강함 즉, 웨이트를 하면서, 나이가 젊음으로써 그러한 방식들(즉,신체(=근력)의강함)만 가르쳐 주더군요.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또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지요. 운동은 운동이구나!>>
그러던중, 아이키도를 접하게 되었고, "성주환 지도원"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 여기에서 전 "환경&스승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일반 도장처럼 아이키도를 접하게 되었다면, 전 "그냥 운동은 운동일뿐이다." 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되었을 겁니다. -
우선, 지도원님은 생각부터가 틀렸습니다. 꼭,"운동은 끝임없는 공부고, 노력이다."라는 느낌이랄까? 정말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운동을 하고 있을때 항상 저한테 신촌본부도장의 윤익암선생님을 뵈라고 항상 말씀하셨지요.- 왜 그렇까(?) 그러한 질문을 제 자신에게 했습니다. - 그러던중 북진일도류세미나, 본부에서의 수련, 그리고, 다과회, 윤익암선생님과의 대화, 미도리 선생님과의 세미나 등등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특히, 윤익암선생님, 북진일도류의 종가사람들, 일본의미도리선생님들을 만났면서 제 자신이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술은 무식하다. 무술은 강함이다 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뭔지 모르게 느낌이 틀렸습니다. 그냥 웨스트를 하면서 빨리 치고, 빠지고, 조이는 느낌이 아니였습니다. -혹시,합기에서 말하는 호흡력이라는 생각입니다.(잘못된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전아직 초보 수준이니까요. 오해하지마십시요 ^^) -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들 왜 지금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가? 저 정도 수준이면, 큰소리 치면서 도장을 운영할수 있을뗀데(돈도 많이 벌면서)..아니면, 건강때문................................ 여기에서 전 스승과 환경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분들의 선생님들은 과연 어떤 분들인가, 만약, 성주환지도원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내운동의 방향은 어떻게 변했을까. 역시, 스승&환경 중요성을 느끼게 하더군요.
요새 보니, 아이키도동호회 이름을 걸고 이곳저곳에서 하는 곳이 많더군요. 과연 이러한 현실을 봤을때 슬펐습니다. 좀 더 좋은 스승을 못만나고 혼자만의 도취에 빠지는 느낌. 우리나라이 무도계의 현실(너무나 도장이 많습니다. 특히, 뭐가 인기 다 하면 다 하더군요. 심지여, ***도장에서는 요가도 가르칩니다.ㅡ,.ㅡ)또한, 한쪽으로는 난 정말 운이 좋다.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거치면서, 요샌 영어 공부를 한다시고 주절이주절이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이러한 다짐들이 쭉~~ 갈수 있게 많이들 도와 주십시요. ^^

*@>@ 머리가 정말 잘 돌아가지가 않습니다. 10년만에 영어 공부를 할려고 하니...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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