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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55&article_id=4389

2002년 대선 전, 위 딴지인터뷰를 읽었을 때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 저는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만큼 경제 발전을 하고도 자신감, 미래에 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정통성 없는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합니다. 정통성 없는 역사. 강자에게만, 양지쪽에만 볕이 들고, 항상 강자에게 줄을 서고 양지쪽을 찾아가는 사람들...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우리의 역사.. 너무 오랫동안 계속된, 이 바뀌지 않고 계속돼 온 역사 속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결여...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우리가 이만큼 경제 성장을 이루어 놓고도 미래에 대한 확신과 스스로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가 정정당당하게 승복하는 그런 그 원칙이 확립돼 있지 않은 사회다.. 우리 사회가 정통성, 역사성과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


노: 그렇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주의자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노예 제도 옹호론자들이 볼 때는 급진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으면서 굉장히 많이 시달렸습니다. 

시달렸는데, 이 링컨이 죽고 난 뒤에, 11년 뒤, 그 목사 (보좌관쪽을 보며) 이름이 뭐지. 그 당시 흑인 지도자, 잭슨 목사 아닌가 싶은데. (다시 고개를 김 쪽으로 돌리며) 하여튼 흑인 지도자 목사가 링컨의 조그만 초상을 만들어서 링컨의 영전에 봉헌하면서 그 얘길 합니다. 

그는, 그는 정말 우리 흑인들에게 섭섭하게 했다. 왜냐면 흑인들의 요구를 너무 더디게 들어줬고, 때로는 남부 주를 해방시킨 북부 사령관이 노예해방 조치를 했을 때 그것을 다시 취소하기까지 했다. 노예 해방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다. 그런데 대한 섭섭함을 다 얘기하면서. 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이 죽고 난 시점에서 보니까 그가 결국엔 많은 노예를 해방시켜 놓았더라.. 흑인들이 푸른 군복을 입고 군대도 가고, 행진할 수도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길 하면서 링컨의 노예 해방자로서의 공을 아주 높이 기리는 그런 연설을 합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링컨은 노예 해방론자이지만 그는 그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결국 아주 합리적인 속도, 속도 조절을 한 것이거든요. 노예 해방의 속도를 아주 정교하게, 뭐라고 할까요, 아주 현명하게 디자인해냈단 말이에요. 그것이 정치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저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 모두가 등을 돌리던 때에도 저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직을 이양한 후, 고향에서 보여주는 미소와 소탈함에 저도 같이 흐뭇해하며 웃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정치인이 아니라, '매력적인 한 인간'이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거짓말처럼 이 땅을 떠났습니다.

당신이 떠난 이곳, 앞으로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을 이 땅이

더욱 큰 혼란에 휩싸이지 않을지 걱정됩니다.


당신이 이땅을 떠나서 참으로 슬픕니다.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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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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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묘우 2009/06/01 01:34  Comment address/댓글주소  Edit/Del;수정/삭제  Write/댓글쓰기

    그리운 얼굴.....
    역사 앞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던질 줄 아는
    진짜 사나이...의 일상적인 미소는 저리도 밝고 소박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