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부터 3월 3일까지 11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첫 출근을 하니, 돌 세례가 반겨줍니다. 휴가 당일 공항으로 향하던 중에도 도로에서 불타는 차량을 2대 목격하기도 한데다, 휴가 중에 동티모르 현지의 치안상황이 더 악화되었다는 뉴스를 Bali에서 접한 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제 관할구역인 Becora마저 이제는 무법천지로 변했습니다.
아침부터 신고를 받고 Taibesi Market에 이동하니 길이 모두 돌이나 나뭇가지로 막혀있습니다. 진입하자마자 바로 차량에 돌이 날아왔습니다. 포루투갈 FPU를 호출한 후 바리케이드를 치우자마자, 1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시 싸움이 났다는 신고. 마을을 접수하려는 갱단 Sacred Heart와 이를 거부하는 젊은 주민들간의 싸움입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운집해있던 이들이 달아납니다. 멀리서 쏴보라며 놀려대는 갱단멤버에게 손가락총을 겨눴더니 놀라 도망갑니다. UNPOL들이 모두 미온적인 사람들만 있다고 착각했나 봅니다.
Valide 지역을 지나치려니 Dili 경찰서 unit과 뉴질랜드 군인들이 역시 돌무더기와 불타는 타이어들로 가득한 도로를 치우고 있습니다. 지나가자마자 ‘팍’하는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봤더니 차량 뒷유리창이 깨져있습니다. 즉시 차량을 후진시킨 후, 필리핀인 동료와 함께 총을 장전한 뒤 차에서 뛰쳐나와 용의자를 뒤쫓는, 마치 액션영화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1주일 즈음 전부터 수도 Dili 대부분의 지역에서 하루 종일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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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간의 휴가 중에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머물렀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도 Jakarta에 가서 다시 Bekasi로 이동, Kobayshi Dojo계열의 Ben’s Dojo Aikido를 방문하여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수련했습니다. Koyanagi 선생이 도장을 방문하여 지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티모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발리, 다시 자카르타, 또다시 차를 타고 베카시로 간 것입니다. 휴가 당일 아침까지 이틀간 밤샘근무를 한지라 자카르타로 향하기 전 공항에서 조금이나마 컨디션을 회복하자는 절박한 심정에 Reflexology(발마사지)를 받았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압 등으로 아파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베카시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금요일 저녁수련을 위해 도장으로 향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수련은
베카시의 Tarman Galaxy에 있는 식당 2층에 위치한 Ben’s Dojo Aikido는 도장장 Benny Agus씨와 부인 Cesillia가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베니씨는 17년간 아이키도를 수련했다고 합니다. 도장에 들어서니 이미 와있던 고야나기 선생(얼마 전 5단으로 승단했습니다.)이 반가이 맞아줍니다. 5년여 만의 만남입니다만, 전혀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검장 무기술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도장장 베니씨를 포함하여 인도네시아에 검장술을 지도한지 이제 2년여 밖에 되지 않아 모두 어색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검(Katana)의 이미지와 인도네시아인이 생각하는 검(Machete, 정글도)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검술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고야나기 선생의 말. 결국 3일간 고야나기 선생의 조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고야나기 선생과 1층에서 대화를 나누며 현지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베니씨의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부자들이 사는 고급주택단지였습니다. 경비원이 단지입구를 지키고, 으리으리한 2층집에 뒷마당에는 분수까지 있습니다. 그곳의 게스트룸에서 묵던 고야나기 선생과 함께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만, 사실 베니씨는 주식으로 큰 돈을 버는 듯 했습니다.
일요일 유단자 수련이 끝나고 현지 수련생의 2단 승단심사가 있었습니다. 또한 베니씨의 4단증, 부인 세실리아씨의 초단증 수여식도 있었습니다.
고야나기 선생과 동티모르의 상황과 아이키도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수련하러 왔냐’는 화제에는 그저 ‘즐거우니까’라는 답변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리에 돌아와 1주일 정도 묵는 동안에 한 것은 발리 중심가를 걸어서 돌아다니며 그간 필요했던 물품을 사고 지리를 익히거나, 호텔의 풀장에서 온종일 수영을 하거나, DVD를 왕창 사서 본 것,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발리식으로 수저 안쓰고 손으로 밥먹고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노닥거린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묵었던 Bali Matahari 호텔에는 마침 일본의 대학 방학시즌인지라 대부분의 투숙객이 일본인들이었습니다. 거리를 나가봐도 70%이상은 일본인. 저는 외국에 나와서 처음으로 제가 평균적인 한국인의 얼굴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부분 열에 아홉은 저를 일본인으로 보고, 그 다음으로 중국인, 심지어 캄보디아인으로까지 생각하는 걸 보고는 놀랐습니다.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못 알아보냐면 그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한국인이라고 자꾸 되풀이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면 일본어, 중국어에는 중국어로 답했습니다. 캄보디아어는 전혀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호텔에 묵은 첫날 풀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자니 발리의 평온함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커플끼리 여행 온 일본인 대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 커플은 제가 고다이라(Kodaira)에 자주 간다고 하니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미샤쿠지(KamiShakujii)에서 왔다며 마치 동향사람을 만났다는 듯 반깁니다. 다른 커플과 친하게 지냈는데, 남자는 도쿄대, 여자는 게이오대를 다니는 재원들입니다.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만, 결국 ‘문화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다’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제가 아이키도를 접하면서 일본의 문화, 또한 한일관계,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는 얘기를 해주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 한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양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중국인 친구 또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한국어를 배우는 걸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들 또한 얼마 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제가 일본을 방문할 때 꼭 다시 만나자고 하기에 연락처를 교환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동티모르에 오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되뇌이게 된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세계인이다.’라는 역도산의 말. 그리고 ‘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지개를 이루어야 한다’던 스리랑카인 동료 Mahesh의 말. 한국에서, 동티모르에서, 일본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저는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저를 비롯한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아시아’의 이미지가 중국, 한국, 일본 정도의 북아시아에 국한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곳 동티모르에서 제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필리핀인들입니다. 같은 아시아인임에도 저는 필리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나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까 오해가 발생하고, 미움이 생겨납니다. 두려움을 감추려고 노려보는 상대에게 나 또한 두려워 거꾸로 노려보면 싸움이 발생합니다. 노려보는 상대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게 최선의 호신술 중의 하나라는 것을 저는 이곳에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p.s.2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얼굴을 아주 젊게 봅니다. 저를 보고 자카르타에서는 20살, 발리에서는 24살 아니냐고 하더군요. 슬라이드쇼 말미에 나오는 친구들 몇 살 같습니까? 20살 파릇파릇한 청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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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이 좀더 않좋아 졋나보네요..항상 조심하시길..그리고 멀리서도 열심히 이신모습 언제나 보기 좋습니다...화이팅